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0강 시편 118편 버려진 돌이 머릿돌로 된 신비

재생 시간 : 08:05|2013-01-18|VIEW : 3,037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22-23절) 시편 118편은 개인 감사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1절에서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로 시작하여 마지막 29절에서 같은 말로 마칩니다. 이 시편에는 하느님의 자애를 철저하...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22-23절)

시편 118편은 개인 감사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1절에서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로 시작하여 마지막 29절에서 같은 말로 마칩니다. 이 시편에는 하느님의 자애를 철저하게 입은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사람에게 버림받음과 하느님께 선택되는 과정 속에서 버림받은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신비를 깨닫고 전합니다. 이 시편에는 선택의 신비와 기적적인 전환이 나타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수난전날 저녁에 빠스카 만찬을 하시고 이 찬미 노래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습니다. (마르 14, 26; 마태 26, 30)

교회 전통에서 이 시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는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뿐 아니라 부활 주일을 위한 시편이 되었습니다. 이 시편은 버림받은 자의 노래요, 죽음으로부터의 승리의 노래이며, 믿음을 증거하고 선택받음의 신비를 노래합니다.

곤경 속에서 내가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이끄셨네. (5절)

시인은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구원을 요약하여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곤경 속에서 넓은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당한 곤경이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곤경"으로 번역된 말은 '묶이다, 속박되다'를 의미하는 동사와 연관이 되며, 압박감을 받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은 비구원의 상태를 말합니다. "넓은 곳"은 자유와 생명과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제후들을 믿기보다. (8-9절)

이 절은 짤막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짧지만 큰 힘이 되는 교훈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공동체 전체에게 지혜를 줍니다. 여기에서 "사람"과 "제후들"은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후들"은 주님께 대비되는 인간적인 권세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위기를 맞게 되면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고 싶어 합니다. "주님께 피신한다."는 것은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만을 믿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하게 마련이고 하느님을 의지하면 언제나 든든합니다.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 (17-18절)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는 말로 보아 시인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여기서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멸이나 부활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살아서 인생을 의미 있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그를 살려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분이 하신 일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알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주님의 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주님의 벌을 교육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22-23절)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선택되었다는 비유입니다. 이는 쓸모없다고 생각되었던 돌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쓰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버려진 돌"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도 생각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한테서 팽개쳐지고 모멸을 받았습니다. "머릿돌"은 기초와 연관됩니다. 이 돌은 건물의 초석으로 모든 건물의 기초를 묶어줍니다. 이 돌이 빠지면 모든 건물이 내려앉습니다. 이 구절을 은유적으로 보면, 시인은 사람들로부터 배척과 경멸과 박해를 받아 죽음에 던져졌지만 이제 구원되어 하느님의 손에서 귀하게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은 이 사건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해 이 사건 속에서 주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경험하였음을 말합니다. 이는 시인의 구원과 신분 변화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특히 22-23절의 고백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에 적용됩니다. (마태 21, 42) 이 구절들은 부활시기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말씀이며, 주님의 수난을 잊은 채 부활을 축하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시편 118편은 주님의 선하심과 자애에 대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그는 죽음에서 살아나서 그의 삶의 목적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의 일을 선포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살려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은혜를 세상에 증거하겠다고 합니다.

이 시편에서 세상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 시편은 버림받은 이로서의 주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소외된 이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버림받은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느님께는 선택받으신 보배로운 산 돌'이십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