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18강 시편 90편 덧없는 인생과 지혜로운 마음

재생 시간 : 08:28|2013-01-17|VIEW : 2,626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3절)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12절) 시편 90편은 전통적으로 공동 탄원 시편으로 분류되지만, 영원한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 앞에서 덧없는 인생을 탄원하며 복된 삶을 간구하는 교훈적인 지혜 기도에 ...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3절)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12절)

시편 90편은 전통적으로 공동 탄원 시편으로 분류되지만, 영원한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 앞에서 덧없는 인생을 탄원하며 복된 삶을 간구하는 교훈적인 지혜 기도에 속합니다. 이 시편에는 공동 탄원 시편에서 일반적으로 나오는 질병·가난·박해·기근 등과 같은 요소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인생을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 시편에서 주님은 인간과 함께하시는 영원한 창조주 하느님이시며 인간은 덧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지혜(슬기)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절망적이고 덧없는 인생(3-10절)을 받아들이고 복된 삶(13-17절)을 염원하는 희망을 가집니다.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3절)

'영원에서 영원까지 하느님'(2절)이신 주님과 '먼지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가 대비됩니다. 여기에서 "먼지"는 인간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다"라는 낱말은 일차적으로 '돌아가다'라는 의미이지만 영적인 관계에서는 '하느님께 돌아가다', '회개하다'를 뜻합니다. "돌아가다"는 보통 행동과 방향의 전환을 나타냅니다. 이 용어는 예언서에서는 주로 '회개를 촉구하고' 지혜문학에서는 '악에서 돌아서는' 의인의 특정한 자세를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는 "먼지"와 함께 사용되어 인간이 죽을 운명에 처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죽을 운명에 처한 연약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태어난 것은 또한 죽는다는 인간의 운명을 진술합니다. 이 죽음은 죄(8절)에 대한 벌(7.9.11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은 창조되었으며 다시 창조주의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로써 인간의 생명도 죽음도 모두 하느님의 영역에 속합니다. 인간은 결코 생명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영원히 존재하는 하느님과 제한된 생애를 살아야 하는 인간의 차이입니다. 인간이 흙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가 흙에서 창조되면서 시작되었던 그의 실존 주기가 끝을 맺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5절)

"쓸어 내다"라는 히브리 말은 '홍수가 지도록 퍼붓다, 홍수로 쓸어 가 버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로 홍수가 나서 순식간에 모든 것이 다 쓸려가 버리듯이 하느님이 인간들을 홍수로 휩쓸어 버림으로써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생명이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홍수에 쓸려가듯이 우리 인생도 허무하게 순식간에 끝나 버림을 비유합니다.

"잠"은 성경에서 죽음의 은유로 쓰입니다. "잠"은 아침에 깨어나면 더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므로 덧없는 인생을 비유합니다. "잠"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의도는 우리가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이 끝나 버린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풀"은 오래 살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주로 덧없는 인생을 상징합니다. 인생을 풀에 비유하는 것은 인간이 풀과 같이 덧없는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며 결코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풀의 운명과 같은 인생은 영화 속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한 "시들어 말라버리는"(6절) 풀처럼 인간의 죽음은 비참하고 허무합니다.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12절)

시인은 하느님께 그가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날수, 곧 인생의 길이를 헤아린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 "날수를 센다"는 것은 끊임없이 인생의 덧없음과 짧음을 묵상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날수를 올바르게 헤아리는 것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은 "지혜(슬기)로운 마음"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시편 119, 100) 하느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절에서 "지혜로운 마음"은 인간의 덧없음과 한계를 아는 것이고, 또한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구원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시편 90편은 영원하신 하느님과 유한한 인간을 노래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영원하신데 비해 인간의 본질은 흙이며 무상합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80년 밖에 살지 못합니다. 제한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나마 그 세월도 고생과 고통입니다.

시편 90편은 인간은 흙에서 창조되었고 나약한 원래의 상태에서는 덧없고 죄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지만 "지혜로운 마음"을 얻으면 하느님의 현존 속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시편이 주는 지혜의 교훈은, 인간은 자신의 덧없음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를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덧없고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이 함께하시도록 그분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으로는 모든 일을 잘 이룰 수 있습니다.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저희에게 잘되게 하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되게 하소서."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