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16강 시편 62편 말없이 기다림

재생 시간 : 08:22|2013-01-17|VIEW : 2,932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니   그분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기 때문이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2-3절) 시편 62편은 신뢰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인은 하느님만을 기다린다는 확신을 드러냅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신뢰합니다. 이 시인은 상류...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니  
그분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기 때문이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2-3절)

시편 62편은 신뢰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인은 하느님만을 기다린다는 확신을 드러냅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신뢰합니다. 이 시인은 상류층 사람으로 보입니다. (4절) 그러나 그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현재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원수의 공격을 받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원수는 폭력을 행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자입니다. 그는 원수의 공격을 직면하면서도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선언합니다. 그는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3.7절)고 확신합니다. 시인은 위기 가운데서도 자신을 잘 정리해 나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교훈도 찾아내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9-13절) 시인은, 인간이 제 아무리 부자이고 권력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신뢰를 두어야 할 곳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능력"과 "사랑(자애)"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니 그분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기 때문이네. (2절)

이 구절은 시인의 하느님께 대한 확신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그의 내적 투쟁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 투쟁이 필요합니다. 그의 영혼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던져버리고 하느님만을 바라봅니다.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깊은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 품속에 있는 것과 같고, 노인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침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물질과 기술을 믿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침묵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보기를 두려워하고 부지런히 이 사건 저 사건으로 옮겨 다니면서 침묵이 힘들어집니다.

시인은 침묵 가운데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 앞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그분께 여유 공간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고, 그 말씀을 영원토록 간직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침묵한다는 것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호흡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거기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오직 주님을 말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 말씀 하소서. 당신의 종이 듣고 있나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 영혼이 침묵 속에서 하느님께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3절)

시인은 하느님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로 부르고 있습니다. "바위"는 안전과 안정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바위이신 하느님께 두려움과 근심을 내려놓고 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등산을 할 때 우리의 산에서도 바위는 참 좋은 쉼터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의 마지막에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마태 7, 24) 예루살렘 교회는 실제로 바위 위에 세워졌습니다.

"성채"는 억눌린 자를 보호하시고 약한 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시는 하느님께 비유됩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바위와 성채의 이미지에서 나옵니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를 흔들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결심합니다.

하느님께서 한 번 말씀하신 바 내가 들은 것은 이 두 가지. 능력이 하느님께 있다는 것. 그리고 주님, 당신께는 자애가 있습니다. (12-13ㄱ절)

여기에서 "한 번"과 "두 가지(번)"는 정확한 숫자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의 지속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한 번 말씀하시고 시인이 두 가지를 들었다는 것"은 하느님은 계속 가르치시고 시인은 계속 배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이 배운 것은 하느님께는 능력과 사랑(자애)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하느님의 능력과 비교할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은 자애(13절), 곧 사랑이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 활동의 원천은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 없이는 우리에게 열정도 없습니다. 진정한 능력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는 능력은 폭력입니다. 인간은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있습니다. 능력은 하느님의 것이요, 한결같은 사랑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시편 62편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그분을 향해 말없이 기다림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뢰가 있을 때 침묵할 수가 있습니다. 침묵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초월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걱정과 슬픔, 불안과 초조, 혼돈과 소요, 근심과 헛된 꿈,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침묵 속에서 완전히 고요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은 숨결처럼 짧고 거짓되므로 인간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능력 있는 하느님을 조용히 기다리며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침묵 가운데 하느님께 머물러 있으면 신앙과 능력에서 더욱더 성장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에게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