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4강 시편 12편 하느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

재생 시간 : 08:02|2012-12-06|VIEW : 4,808

"저마다 제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3절) "주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 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이나 정제된 순은이어라." (7절) 시편 12편은 악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은 공동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당하...

"저마다 제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3절)

"주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 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이나 정제된 순은이어라." (7절)

시편 12편은 악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은 공동 탄원 시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악인들만 사는 것 같이 보인다. (9절) 이 사회는 악이 성행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암흑시대로 보인다.

시인은 의인들이 사라져 가고 진실한 것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악한 것이 높이 평가를 받는 야비함이 판을 치는 세상을 보고 탄식합니다. 이 시편에서 나타나는 악은 '말'에 의해 빚어지고, 악인의 모습도 ‘말’을 통해 나타난다. 악인들은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혀와 입술로 자기들이 이긴다고 주장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이 시편에서는 인간의 아첨하는 말과 순수한 하느님의 말씀이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인은 '충실한 이'와 '진실한 이'를 찾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 탄식합니다.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충실한 이는 없어지고 진실한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2절)

시인은 충실한 이가 없음을 마치 예언자들처럼 폭로합니다. 혼자 경건하고 진실한 삶의 길을 걷는 것은 고독하므로 시인은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이것은 아합 임금이 예언자들을 다 쳐 죽이고 엘리야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엘리야가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1열왕 19,10)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저마다 제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3절)

말은 통교의 특권적인 수단입니다. 그런데 언어를 완전히 고의로 기만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말하고 간사하며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들은 악인들입니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 충실한 자들과 진실한 자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입니다.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예레 7,28)

"간사한 입술"은 아첨, 또는 감언이설을 말합니다. 아첨을 하는 사람은 나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는 진실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적절한 속임수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중적인 인간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만사에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자기에게 편리한 방법을 씁니다.

악인의 교만하고 거짓된 말과 대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 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이나 정제된 순은이어라." (7절)

하느님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 전체를 뜻한다고 봅니다. 주님의 말씀은 정제된 은과 같아 악인의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주님의 순수한 말씀은 악인의 거짓된 말, 교만한 말, 허황된 말과 다릅니다. 주님의 말씀은 흠이나 거짓이 없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정제된 은에 비유함으로써 거짓, 아첨과 같은 악인의 불순한 말과는 달리 하느님의 말씀은 불순물이 전혀 없어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말씀이 순수하다는 것은 결국 피조물인 우리의 말도 순수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맺음말. 시편 12편은 '말'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말'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말'은 태초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뱀은 속이는 말을 하여 인류가 죄를 범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바벨탑의 언어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 피조물들의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말들은 진실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결국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예언자들도(미카 7, 1-7; 호세 4, 1-3 참조), 예수님도 악이 득세하는 세상(마르 8, 38 참조)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지금도 거짓되고 교만하고 허황된 말들은 세상의 참된 것들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깨끗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말'이 순수성을 지닐 때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지만, 거짓말은 인간관계를 끊어버릴 뿐 아니라 불신의 공동체를 만들게 합니다. 순수한 하느님의 말씀과는 달리 오염된 인간의 말은 공동체에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습관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는 곧 우리의 내면을 반영할 뿐 아니라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우리의 말을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순수한 말뿐 아니라 창조적이고 남을 살리는 말을 하기 위해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해야 하며,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야고 3, 9). 더욱이 우리는 "악인들이 사방으로 쏘다니고 사람들 사이에서 야비함이 판을 치는"(9절)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8절)

"주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 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이나 정제된 순은이어라."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