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수녀의 시편 묵상

제2강 시편 1편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재생 시간 : 08:54|2012-11-28|VIEW : 9,087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 (6절) 시편 1편은 '행복선언'으로 시작하여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키고 '인과응보'와 같은 지혜문학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지혜 시편 또는 교훈 시편에 속합니다.   시편 1편은 2편과 함께 시편집 전체의 서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시편 전체를 해석할 수...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 (6절)

시편 1편은 '행복선언'으로 시작하여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키고 '인과응보'와 같은 지혜문학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지혜 시편 또는 교훈 시편에 속합니다.  

시편 1편은 2편과 함께 시편집 전체의 서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시편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합니다. 1편은 히브리 말 첫 자음인 '알렙'에서 시작하여 끝 자음 '타우'로 끝남으로써 인생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편 1편은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을 대조함으로써 행복한 인생길을 제시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악인들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대신에 "주님의 가르침"(토라)을 그들 삶의 원리로 삼습니다.

시인은 먼저 행복한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1절)

"행복하여라"라는 감탄사는 남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모범적이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악인들의 사고방식과 죄인들의 행동방식을 따르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모임에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인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의인은 부화뇌동하지 않고 어떤 압력에도 저항할 수 있는 능력과 명석한 식별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옳고 그름을 앎으로써 악인들의 방식을 단호히 끊을 수 있는 의지와 분별력의 소유자입니다.

의인은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2절)

"가르침"은 히브리 말로 '토라'입니다. 토라는 구약성경에서 율법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율법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 시편에서 토라는 의인들이 행복의 길로 가는 인생의 길잡이로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인이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토라를 무거운 짐이나 지켜야하는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토라를 즐거워하며 사랑하여 온 마음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되새기다"로 옮긴 히브리 말 '하가'는 '중얼대다, 속삭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신비적 차원의 묵상이나 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소리 내어 읽는 것에 가깝습니다. 곧 율법을 중얼거리거나 작은 소리로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의인은 늘 푸픈 나무와 같다.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3절)

"시냇가"는 지속적으로 물이 흐르는 관개 수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우기에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건천'(와디)과는 달리 시냇가는 계속적으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물길을 따라 깊이 뿌리 내리고 잎이 무성하며 제때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심겼다"라는 말은 '옮겨 심겼다'고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심어진 것이 아니라 '물이 풍부한 곳에 잘 뿌리내려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뿌리내림으로 비바람이나 가뭄에도 파괴되지 않고 충분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안전하듯이 주님의 토라를 좋아하는 의인은 특별한 주님의 은총과 보호를 받아 기초가 튼튼함을 말합니다.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는 의인의 생명력 넘치고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아라." (4절)

"겨"는 내용물이 없이 가벼워 바람에 날리는 쭉정입니다. (시편 35, 5) 쭉정이는 타작 때 알곡과 분리되어 불 속에 던져져 타버립니다. (마태 3, 12; 루카 3, 17) 이것은 하느님의 최후 심판을 상징합니다. "겨"는 생명력을 지닌 열매와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처럼 악인들이 가볍고 쓸모없으며 생명력이 없는 "겨"에 비유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가볍고', '쓸모없으며', '생명력'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 (6절)

"알고 계시고"라고 옮긴 히브리 말 '야다'는 단순히 선과 악을 아는 것 뿐 아니라 어떤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거나 어떤 사람을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알고 계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호하시고 보살피는 것이며 이것은 곧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문학에서는 "악인들의 길"과 "의인들의 길" 가운데 인생의 길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두 길이 제시될 때는 언제나 선택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악인들의 길은 파멸과 죽음의 길입니다. 악인들의 길이 생명력이 없고 파멸로 향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자신의 지식과 재원만을 의지하여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입니다.

맺음말 : 행복과 불행의 길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기초로 삼고 삶의 기쁨을 토라에서 찾는 이들은 행복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자기 자신을 기초로 삼는 자들은 주님에게서 멀어져 불행하게 됩니다. 행복과 불행은 개인의 결단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실천하여 참된 행복의 길, 곧 의인들의 길을 걷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해야 할 의인들의 길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십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