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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9)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9)

이웃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섬기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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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0 발행 [1431호]
▲ 카르도넬 체험 이후 이냐시오의 영성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도적이고 공동체적 차원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성 이냐시오 성화. 출처=가톨릭굿뉴스



이냐시오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만큼 강렬한 조명이 자신에게 비쳐왔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토록 강렬한 조명을 체험했음에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이 없다. 그 이유는 이냐시오에게 ‘하느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다’보다는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르도넬 체험(카르도넬 강둑에서 일어난 신비 체험)을 통해 이냐시오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가 이 체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냐시오는 앞선 네 가지 영적 체험에 대해 진술할 때에는 오성(悟性, understanding)으로 “보았다”고 증언하지만, 카르도넬 체험은 본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카르도넬 체험은 지성적(intellectual)이다. 하느님께서 이냐시오의 오성에 직접 지성적 빛을 주입해 주신 것이다. 예수회 총장이었던 페드로 아루페(1907~1991) 신부는 이 조명을 이냐시오가 자신의 과거와 단절되고 다른 미래의 빛의 지표가 되는 일종의 ‘성령 강림’이라고 말한다.

카르도넬 체험을 통해 이냐시오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이냐시오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방법론을 배웠다. 방법론은 다름 아닌 ‘식별의 원리’다. 이냐시오는 능동적 정화과정에 들어갈 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영적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그에게 위로와 슬픔을 가져다주기도 했던 뱀의 형상을 한 물체에 대한 환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자서전」 31항) 그러나 카르도넬 체험 이후로 이냐시오는 자신의 ‘경험적 지식’에 바탕을 둔 식별의 원리에 따라 그 환시가 악마에게 온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됐다.

두 번째, 일련의 영적 체험을 통해 특히 카르도넬 체험은 이냐시오의 영성이 수덕적(금욕적) 영성에서 사도적 영성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냐시오의 만레사 초기 생활의 본보기는 오누프리우스의 수덕적 삶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가 일 년을 보낸 만레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위로(위안)를 주시기 시작하고 하느님께서 영혼들을 치유하시는 열매(위로)를 그가 본 후, 그는 형식을 따라 고수해 오던 극단적 행위를 중지하고 손발톱과 머리를 깎았다.”(「자서전」 29항)

이냐시오는 로욜라에서부터 속죄와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고, 성 오누프리우스가 살았던 수덕적 생활 양식을 본보기로 생활해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으면서 이냐시오는 자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안에서 일하시며 그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됐다. 고행하면서 자신 안에 머무르는 삶보다 이웃을 섬기고 돕는 것이 하느님을 더욱 섬기고 하느님께 더욱 커다란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위대한 행동을 하는 것 대신에(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 대신에), 다른 이들 안에서 일어난 효험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게 됐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냐시오는 이웃에게 더욱 다가서고 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기존에 해왔던 극단적 고행을 중지하고 여느 사람처럼 외모를 유지했다. 사도적 영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이냐시오에게 오누프리우스는 더이상 삶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다.

이냐시오가 새롭게 깨달은 사도적 영성의 중요성은 카르도넬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깊은 인식을 통해 더욱 심원해졌다. 카르도넬 체험이 앞서 받은 일련의 조명들의 정점이라면, 그가 카르도넬에서 받은 조명의 내용은 하느님의 본성과 성삼위의 일치에 대한 것이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밖으로’의 활동, 즉 창조와 강생에 대한 심원한 지식이다. 이냐시오는 카르도넬에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하느님(Economy Trinity)’을 강하게 체험했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하느님’이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 하느님’의 생명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시는 것처럼, 이냐시오도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 위해 이웃을 향한 사도적 소명의 삶을 더욱 깊이 살아갔다.

더 나아가서, 이냐시오의 카르도넬 체험의 핵심이 삼위일체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이냐시오의 사도적 영성이 개인적 차원으로만 국한되기보다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돼 수행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은 성삼위가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며, 공동체로서 인류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냐시오의 사도적 영성의 공동체적 측면은 이냐시오가 카르도넬 체험 후 만레사에 머물던 중에 작성된 「영신수련」의 핵심 묵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관상’과 ‘두 개의 깃발 묵상’에서 드러난다. 묵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협력해 그의 사업을 지상에서 계속해 나아가도록 모든 사람을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냐시오는 만레사 이후 자신의 순례 여정 중에 끊임없이 동료들을 모으고자 노력했으며, 이냐시오가 지닌 이러한 공동체적 비전은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성 데니스 성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원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

혹자는 영신수련이 매우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영신수련을 하는 동안의 기도가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과 ‘영신수련을 주는 이’와 ‘영신수련을 받는 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영신수련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동체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전망 안에서 매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신수련을 마친 이의 영성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더욱 사도적이고 더욱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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