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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내 탓이 아니오’

[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내 탓이 아니오’

안희곤 하상 바오로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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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7 발행 [1688호]


생각해보면 30년 전 가톨릭이 벌인 ‘내 탓이오’ 운동은 대단했던 기억이다. 미사 중 ‘고백의 기도’에서 가져온 이 말은 1990년 무렵 민주화와 함께 분출된 이념, 지역, 노사 갈등의 상황에서 국민신뢰회복 운동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자동차 뒤창에 파란색의 ‘내 탓이오’ 스티커를 몸소 붙이면서 캠페인에 앞장섰고, 스티커 40만 장이 순식간에 동날 정도로 큰 호응이 뒤따랐다. 하지만 운동의 한계도 뚜렷했다. 잘잘못 가리지 않고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문제를 평평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불평등, 차별, 편법과 같은 사회적 갈등과 불신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결국 ‘내 탓이오’는 자동차 뒤창 스티커의 양보운전 캠페인 정도로 명맥을 다했던 기억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그 날 밤, 나는 밤새 울다가 자다가 깨어나 또 울었다. 아마 모두가 그랬으리라. 일순간 멈춰버린 아이들의 빛나는 삶 앞에서 모든 게 내 탓, 아무리 가슴을 쳐도 그 어린 생명들에 값할 수 없는 듯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록 놔두고 희희낙락 살아온 이 아저씨, 아줌마들의 탓인 것 같았고, 무엇보다 우리의 무력감에 통탄했다. 내 탓이었지만 그 탓은 가만히 있었던 탓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대로 무능한 권력, 무책임한 저 자본을 방치해두고 싸우지 않은 탓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또 한 번 우리의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사건이었다.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그 자리에서 성모송을 열 번 외웠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마지막 구절을 ‘저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로 바꿔 외우면서 죄 없는 젊은 죽음들에 가슴을 쳤다. 불의의 죽음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슬픔, 부정, 분노로 이어진다고 한다. 처음의 비통함이 가시자 ‘도대체 왜?’라는 물음과 까닭없는 분노가 이어졌다. 기성세대인 내가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동안, 정작 내 탓을 말해야 할 이들이 일주일이 지나서야 책임을 느낀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과연 분노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책임자의 통렬한 자책이 앞서야 할 시간에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책임을 느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미사 강론에서 ‘우리 자신의 책임’과 함께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우려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쟁’을 운운하던 이들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말을 듣고 가장 흡족했던 사람은 아마도 그 미사에 참석한 대통령과 부인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가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세상 모든 일을 책임질 수도 없거니와, 우리는 이 책임을 대신해달라고 우리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늘 국가 안보나 국민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망해졌을 때, 금세 방향을 틀어 자신의 오작동을 작동의 에너지로 삼는다.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이들을 정쟁과 분열의 세력으로 몰아 다시 한 번 지지를 긁어모으려 한다.

‘내 탓이오’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와 정의도 평화의 정신 못지않게 그리스도의 준엄한 가르침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진실과 정의의 바탕 위에서만 참된 평화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천주교가 보수화되면서 갈등과 분열을 두려워하는 순진한 종교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과 함께 진리를 향한 칼 곧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예수님의 뜻을 함께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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