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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덕 원한다면 모든 통제권을 하느님께 넘겨주세요”

“인내의 덕 원한다면 모든 통제권을 하느님께 넘겨주세요”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20. 인내의 미덕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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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7 발행 [1688호]
▲ 급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분노보다 용서를, 불평보다 평화를 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pixabay 제공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오가는 수많은 군중 틈 사이에 껴서 출근하는데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조급한 발걸음, 그 뒤를 바쁘게 쫓아가는 저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빠도 바쁘지 않아도 우린 프로그램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로봇처럼, 늘 바쁘다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급한 약속도 없으면서 보행자 신호가 깜박이면 마음이 바빠지고 자신도 모르게 잰걸음으로 쫓기듯 허겁지겁 길을 건너갑니다. 시간이 있는데도 전철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안해지고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으로 헤집고 들어갑니다. 누군가 대화 도중에 할 말이 생각나면 언제 껴들어 말해야 할지 타이밍을 재고 있고요. 전화를 늦게 받거나 문자메시지 회신이 늦어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누군가에게 질타를 받기도 하고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성과를 내는 데에 익숙해진 반복 학습 탓일까요? 기다린다는 것, 참아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오래 참아야 한다면 점점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기다리는 일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짜증까지 나는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기다림의 연속이 바로 우리네 삶일 텐데 말입니다. 참고 버티고 인내하면서 결정적 삶의 전환을 이루어 내는 소중한 삶의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미덕을 살고 싶은 김 수녀 드림.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사도 바오로가 말씀해주시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지요.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영민하지 못해서도 게을러서도 아니에요. 오로지 나 자신의 영적 성장을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단순한 일상에서 기다리며 참아내는 인내의 덕은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되니까요.

물론 처음부터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시련을 참고 견디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사소한 문제와 성가시게 느껴지는 아주 자잘한 것들 앞에서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오히려 참된 인내의 덕을 산다고 할 수 있어요. 매일 만나는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에 대한 인내가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게요.

사실 인내의 덕은 어떤 특정한 것만을 참고 견디는 것은 아니에요. 하느님이 주신 모든 것을 참아 받는 것인데요. 심지어 조롱과 비난과 괴롭힘을 당할 때도 흔들림 없이 참아내는 것이 인내의 덕이겠지요. 그런데요. 세상이 악인이라고 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면 인내하기가 조금 수월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세상이 존경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친구 가족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은 정말로 참아내기 어려워요. 그렇기에 가족이나 이웃에게 받은 오해나 모욕을 참아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야 할 진정한 인내의 덕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참고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참아주기를 원하면서 남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에 쉽게 실망하고 화를 내는데요. 남이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불완전함을 참고 기다리면 어떨까요? 부모의 열정 넘치는 분노보다 부드럽고 참을성 있는 동반이 오히려 아이에게 훨씬 더 큰 힘이 되어주는데요. 나 자신에게도 다그치지 않고 부드러운 동반으로 인내해줘요.

진심으로 인내의 덕을 살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 원하는 시간에 얻으려는 모든 통제권을 하느님께 넘겨주세요. 사실 조급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욕구에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불안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져요. 역설적이게도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에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통제권을 내려놓아야만 통제가 되는 것이지요.

통제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분노하기보다 용서를 선택합니다. 설사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거나 남이 동정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동정을 받을만한 처지라면 받고, 그렇지 않다면 겸손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지요. 자신의 불행을 말하면서도 불평하지는 않아요. 그렇기에 진실과 인내 사이에서 평온하게 머물 줄 알지요. 이는 통제권을 주님께 넘겼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세상이 바쁘게 몰아쳐도 우리는 절대 서두르지 말아요. 비록 온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여도 우리 영혼과 내면의 평화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내심을 가질수록 행복은 더 커져요. 그만큼 나의 영혼을 지킬 힘이 세졌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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