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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청소년부모는 서럽다

‘어른아이’ 청소년부모는 서럽다

어렵게 생명 선택했는데 멸시와 비하에 ‘눈물’… 제대로 된 현황 파악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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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발행 [1681호]
▲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선 청소년한부모 한주현씨와 두 살 아들 수언이가 한강변 잔디밭에 앉아 깁밥을 먹고 있다.



가을 음악축제가 한창인 노들섬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이 아이는 수언(가명, 2)이다. 누군가 수언이를 붙잡기 위해 분주히 달려온다. 앳된 얼굴이 큰 누나쯤 되나 싶은데, 수언이의 엄마인 한주현(24, 가명)씨다.

한씨는 22살 때 청소년한부모가 됐다. 청소년한부모는 모 또는 부가 청소년인 것을 말한다.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은 만 9세 이상에서 24세 이하인 사람이다. 아이 아빠는 한씨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조리원비 90만 원이 밀리면서 그는 난생처음 금전적 어려움을 경험했다. “다행히 산후조리원 소개로 미혼모시설에 입소하게 됐어요. 그때의 심정은 ‘내가 미혼모라니!’ 정도일까요? 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죠.” 그가 입소한 미혼모시설은 상황이 열악했고 그곳에서의 생활도 그리 순탄하진 못했다. “제가 지냈던 시설은 사생활이 전혀 없는 건 기본이고, 시설 홍보를 위해 행사에 동원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그나마 저는 좀 낫죠. 땡볕에서 캠페인을 하는 동안 만삭인 임산부도 차출됐는걸요.”

언젠가 미혼모 시설을 나와야 하는데, 지역사회로 가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겨우 자립하고 나서도 청소년한부모에 대한 멸시를 견뎌야 했다. 지하철에서 초콜릿을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수언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쩔쩔매던 중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 우는 거 좀 조용히 시켜요!” 인근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었다. ‘애 낳은 게 죄도 아닌데’ 왈칵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 한씨는 나이를 잊고 언성을 높였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언쟁은 마무리됐지만, 그의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휴대폰으로 적은 문자를 그에게 보여줬다. ‘아이 돌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많이 힘드시죠? 힘내세요.’ 그 순간 한씨는 눈물을 쏟았다. “처음 보는 사람의 따뜻한 응원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어요. 그분이 내리고도 한참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강유빈(가명, 체칠리아, 20)씨는 만삭이 되어 자오나 학교에 입학했다. 자오나 학교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선교수녀회에서 설립한 청소년 양육미혼모,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다. 이곳에 오기 전 강씨는 산부인과를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혼자 가기 무서워서요….” 말끝을 흐리는 강씨는 후회한다고 전했다. “재훈(가명, 마티아, 1)이 초음파 사진이 단 두 장밖에 없어요. 일찍부터 갔다면 재훈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자오나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세 번째 산부인과를 방문했을 때는 진통이 왔다. 출산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때 강씨의 부모님은 처음으로 딸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청소년미혼모라고 소개할 때마다 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때 많이 속상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훈이를 낙태하면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없을 거 같았어요.” 재훈이는 곧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나이를 앞두고 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강씨는 미소를 감추기가 어렵다. “원래 혼자 있는 걸 안 좋아해요. 갓난아기는 말도 못하고 누워만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말도 조금 통하는 것 같고, 좀 더 커서 어린이집에 가면 제 시간도 조금 생길 것 같아서 기뻐요.”

최근 TV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소재에 청소년부모가 등장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청소년부모’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모두 청소년인 경우다. 지난해 청소년인 엄마가 낳은 출생아 수는 8099명, 청소년미혼부·모는 1461명으로 나타났다. 혼인한 청소년부모에 대한 현황은 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2018년 기준 통계청은 3640가구, 행정안전부는 3359가구, 여성정책연구소는 1만 10가구로 추정하고 있다. 청소년부모에 대한 지원을 넓히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법을 개정하고 조례를 마련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현황조차 요원한 실정이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올해 6월 청소년부모 실태 조사를 시작했다. 청소년복지법을 개정해 이들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한 지 1년이 훌쩍 지나서다. 지난해 3월 청소년복지법에 신설된 청소년부모 지원에 관한 조항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지원받는 청소년한부모와 달리, 혼인했다는 이유로 소외받는 청소년부모에 대한 복지 증진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가부가 발표하는 국내 청소년부모 현황은 연말 발표될 전망이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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