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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평화칼럼] 건망증과 하느님

[박용만 평화칼럼] 건망증과 하느님

박용만 실바노((재)같이걷는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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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발행 [1679호]


어릴 때부터 제일 가까운 친구 넷이 오랜만에 만났다. 중국 음식으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코로나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니 자연스레 건강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건망증 때문에 깜빡깜빡하는 것은 네 친구 모두 공통된 현상이었다. 서로 “나도 그래”를 연발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식사가 거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한 친구가 한참 뭔가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머지는 맞장구쳐가며 신 나게 주고받는데 서빙 하는 직원이 들어 오더니 짜장면, 짬뽕 주문을 받는다. 짬뽕, 짜장 한 그릇씩을 둘로 나눠 줄 수 있느냐고 하니 그리 해주겠다고 한다. 배부른데 다행이다 싶었다. 싹싹한 직원이 시원하게 주문을 받고 나갔다. 그게 불과 2분 걸렸을까 싶은 시간이었다. 나가자마자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야. 하, 조금 전에 내가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지?” “몰라.” “나도 기억 안 나.” “나도 모르겠는데.”

말하던 친구도 듣던 친구들 한 명도 무슨 이야기였는지조차 기억을 못했다. 그걸 확인하고는 숨이 넘어가게 모두 웃었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웃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여름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졌다. 가을쯤 돼서는 뭘 찾으려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는 그 사이에 “뭐였지?” 할 정도가 됐다. 누가 아프다거나 어려운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도를 해줘야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막상 기도하려고 앉으면 하얗게 머리가 비워져 있다.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사람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두 달을 고민하다 몰래 병원 예약을 했다. 진찰하는 의사는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더니 핀잔을 준다. “아, 원래 그 나이가 되시면 그 정도는 당연한 거예요.” 휴 다행이다 싶은데 이어서 다시 사람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래도 정밀 검사는 해보시지요.” 그렇게 정밀 검사를 받았다. 혈관이나 뇌에 문제가 있나를 보기 위해 MRI와 3차원 뇌 검사, 유전적 요인이 있나를 보기 위한 혈액검사 그리고 기억력 테스트 이렇게 세 가지를 했다.

며칠 후 결과 통보가 왔다. “모든 검사결과가 완벽합니다. 혈액검사 MRI 모두 완전 정상이고, 3차원 검사에서도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문제도 전혀 없습니다. 기억력 테스트는 평균보다 훨씬 높으시고요.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근력 키우는 운동과 머리 쓰는 일들 열심히 하세요.”

멀쩡한 걸 혼자 걱정하기 시작하면 정말 병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진리를 배웠다. 내가 내린 진단으로는 ‘삶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그랬나 보다’ 정도로 상황종료를 했다. 그런데 기도할 일이 뭐였더라 까먹는 일은 그대로 계속됐다. 휴대폰 메모장에 써놓긴 하는데 그 메모 자체를 까먹어버리는 일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선물을 보내왔다. ‘꿈꾸는 요셉상’이었다. 꿈꾸는 성 요셉상 아래에 근심거리를 써서 놓으면 요셉 성인이 우리를 대신해서 꿈을 꾸며 해결해 주신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꿈꾸는 성 요셉상이 그렇게 해서 지금 내 침실에도 있다. 오늘은 환한 보름달이 요셉 성인의 등 뒤에 떠 있다. 뭐든 소식을 들으면 바로 요셉상 아래 종이에 써놓는다. 물론 밖에서 듣고 집에 오는 사이에 까먹는 일이 있긴 하다.

그저께까지 빨간 종이에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한 사람이 늘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요셉상 아래의 종이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하루 세끼 밥을 먹을 때마다 자동으로 기도하는데 그때 이 사람들을 위해 짧게 기도를 한다. 그리고 밤에는 잠들기 전에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오늘 하루에 누구를 위한 기도가 더 있었나 생각한다. 잠자는 동안 요셉 성인의 기도가 나 대신 이어지니 하느님께서 좀 바쁘셔도 해결해주시리라 믿는다. 하느님께선 건망증까지 해결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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