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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선과 악을 혼동하는 위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시사진단] 선과 악을 혼동하는 위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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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발행 [1679호]



최근 몇 달 동안 국내에서 말기 환자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법안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022.6.15.)이다. 약칭으로 ‘조력존엄사법’이라고 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는 행위가 존엄하니 법적으로 용인하자는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국회의원들이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놓고 존엄하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생명경시 풍조가 얼마나 만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이 법안에 대한 찬반 논의들을 보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생명윤리 교육 수준에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소수의 기자를 제외하고는 연명의료중단을 존엄사나 안락사의 일종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칭하는 것에도 아무런 비판적 견해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론조사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7월 13일에 한국리서치가 공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2%가 ‘존엄조력사’에 찬성했다. 그리고 이는 여러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문제는 설문 조항에 “조력 존엄사법은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한 단계 나아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응답자는 조력존엄사법이 무엇인지보다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단언컨대,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는 행위는 존엄한 행위도 ‘품위 있는 죽음’도 아니다. 자살 행위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자기결정권을 인간 존엄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병든 문화를 키워가고 있다. 인간은 누구의 간섭이나 강요되는 일이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결정에는 도덕적인 책임이 따른다. 왜냐하면, 나의 자유는 이를 실현할 공간(세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나의 자유, 나의 자기 결정을 실현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의 자유를 실현할 공간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서 내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간섭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유가 구현되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과실과 파괴적인 자유를 허용하게 되면 세계와 그 구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우리의 자유가 실현될 공간, 즉 세계를 크게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질서 유지와 올바른 자유 실현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법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잘못된 방향과 파괴적인 행위를 부추긴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인간이 자기 결단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향을 받고 있으며, 특히 대중 매체의 여론과 선전의 조정에 내맡겨져 있음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는 매우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자기결정권을 인간 존엄의 최고 가치인 것처럼 치장하고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부르는 순간부터 이미 거짓된 정보와 잘못된 용어 사용의 영향력 아래 들어선다. 그러므로 의사조력자살을 결코 ‘조력존엄사’라고 불러서도 허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과 사회의 윤리의식은 모두 극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침투력이 강한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즉 생명에 대한 기본권과 관련해서 선과 악을 혼동하는 위험을 말하는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2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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