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6주일 -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는 ‘다리’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6주일 -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는 ‘다리’

Home > 사목영성 > 생활속의 복음
2022.09.25 발행 [1679호]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면 그분께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내 신원을 보증해주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현재와 미래에 함께하시며 보살펴주시기에 세상의 금은보화가 없어도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그런 하느님이 아닌 재물에 믿음을 두었고 그것이 그의 ‘죄’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쥔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쾌락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타인의 배고픔과 괴로움 앞에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그런 차가운 무관심과 방치 때문에 종기로 고통받던 형제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쓸쓸하게 죽어갔지요. 그가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다면 남을 미워하지 않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가 진정 하느님을 믿었다면 자기 문앞에 누워있는 형제에게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미치도록 애썼을 것입니다. 차가운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자기 주변에 단절과 고독의 구렁을 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그 구렁을 건너갈 ‘다리’ 하나 정도는 놓아두었을 겁니다.

그 ‘다리’를 놓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라자로는 그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그 당시 유다인들은 식사가 끝나면 음식이 묻어 더러워진 손을 빵으로 문질러 씻었는데, 그럴 때 식탁 밑으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는 개들의 몫이었습니다. 라자로는 그런 하찮은 음식으로라도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재물이 아닌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기에,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거라고 믿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은 다 좋고 귀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지요.

이렇듯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작은 빵 한 조각, 시원한 물 한 모금, 오가며 나누는 짧은 안부 인사와 따뜻한 관심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심판의 순간 하느님 나라로 건너갈 수 있는 소중한 ‘다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만 그 사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려 듭니다.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안 된다고, 내가 베푸는 작은 자선 정도로는 어차피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핑계를 대며, 라자로를 모른 척했던 부자의 전철을 밟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이 시대의 ‘이름 없는 부자들’에게 주님은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말씀하십니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받고 누린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에게 그 좋은 것들을 베풀어 주셨음에 감사하며 내가 받은 것을 주님 뜻에 맞게 쓰지 않는 우리의 이기심과 완고함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나쁜 것들을 많이 겪었다고 해서 그 고통과 시련 자체가 구원을 보장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런 나쁜 것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분께 끝까지 희망을 두고 살아간 이들을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믿는다면, 그분께서 나와 세상의 주인으로서 내 삶을 당신 뜻에 맞게 주관하시도록 그분께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지만 그분 뜻에 어긋나는 일은 참고, 힘들고 괴로워하기 싫지만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된 구원입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