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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주님이 주신 선물” 험난한 연기자의 길 뚜벅뚜벅 가다

“연기는 주님이 주신 선물” 험난한 연기자의 길 뚜벅뚜벅 가다

[타인의 삶] (9) 영화배우 변진수(니콜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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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발행 [1678호]
▲ 영화배우 변진수씨가 슬레이트를 들고 웃고 있다.



영화 한 편에는 수많은 사람이 담겨있다. 흔히 기억되는 주연과 조연 외에도 카메오나 엑스트라, 단 한 장면을 위해 며칠을 함께했지만 단 한순간도 드러나지 않는 이가 있다. 그렇게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모여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영화배우 변진수(니콜라오, 38)씨를 만났다.



사람의 흔적

변진수씨의 자택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얼굴로 가득 채운 벽걸이용 달력이 취재진을 맞이한다. 다소 어두운 조명은 집안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고, 초록색과 나무재질로 이루어진 내부 인테리어가 멋들어지게 조화롭다. 가구와 소품 하나하나가 카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이 달력은 본당 전례단을 함께했던 동생이 2019년에 만들어준 거예요. 그 친구가 화가인데 전시회에서 팔았던 이 작품도 제게 선물로 줬고요. 에어컨도 친구가 줬어요. 청소기는 후배가 사줬고요. 이것도….” 그는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지인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것도 잠시 잊고 마치 집들이를 간 것처럼 홀리듯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인에게 사랑받는 변진수씨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모두가 당신이 만든 것이니

그가 연기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2010년쯤이다. 영화 전문 방송 채널의 리포터로 근무하면서 많은 영화감독과 배우 등을 만났다. 스태프 100명 정도가 모여 있는 영화촬영 현장에서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치는 풍경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인파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며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에 매료됐다. 두렵기도 했다. 고정적인 수입 없이 캐스팅에 의존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늘 불안했다. 밤새서 촬영을 준비해 현장에 도착했는데 대본이 바뀌어있거나 NG가 나서 감독에게 계속해 꾸지람을 들을 때면 촬영장에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몇 날 며칠 촬영했지만 정작 영화에는 단 한 장면도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 ‘내가 연기에 재능이 없나’ 싶어 괴롭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신앙은 그에게 버팀목이 돼 주었다. “감정을 끌어오기 위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릴 때 힘들지만, 신앙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어요.” 배역 오디션이라는 시험대에 오를 때는 이렇게 기도했다. “당신이 주신 대본을 당신께서 만든 사람들 앞에서 잘 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결국, 모두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걸 떠올리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 변진수씨는 영화배우로 데뷔하기 전부터 연극 무대에 섰던 연기자이다. 변씨는 꾸준히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영화배우로서 데뷔는 2015년에 이루어졌다. 데뷔작인 독립영화 ‘소셜포비아’가 개봉하면서다.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그에게 소중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자주 가던 영화관에서 가족에게 데뷔작을 선보인 날이다. “감사하게도 첫 오디션을 본 작품에 캐스팅돼서 개봉까지 하게 됐어요. 독립영화는 제작하더라도 개봉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또한 하느님께 감사하죠. 이후로는 여느 신인 배우처럼 오디션에 줄줄이 떨어지긴 했지만요.”

어느덧 7년 차 영화배우지만 그는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죽을 것 같았어요. 그때 동료 배우에게 전화해서 참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하나둘씩 떠나가는 동료 배우들을 볼 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생활고 등 다양한 이유로 영화계를 떠나는 동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등진 배우도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너무 안타깝다”면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자신만의 해결법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에게는 신앙이고,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동료 배우에게도 힘들 때는 ‘기도하는 것’을 꼭 추천해요.”

그의 집 한편에는 기도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그곳에는 변진수씨를 위해 본당 전례단원이 손수 적은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주 하느님,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에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제가 비록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당신은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길 잃은 것처럼 보이고, 죽음의 그림자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는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토머스 머튼의 저서 「고독 속에서의 명상」에 수록된 기도문이다.



놀이터와 소꿉놀이

“모태신앙이었고, 엄마한테 매 맞아가면서 성당을 다녔어요.”(웃음) 부모님의 권유로 복사를 하게 되면서 새벽 미사까지 참여했다. 얼핏 들으면 강요에 의한 신앙생활 같지만, 그에게 성당은 놀이터였다. 중고등부 여름 신앙학교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됐고, 성탄절마다 열리는 성당 행사에서는 연극과 장기자랑을 선보였다. 어쩌면 그에게 연기란 이때부터 또래들과 함께했던 놀이였으리라. 그래서인지 그에게 연기에 대해 물을 때면 마치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추억하듯 미소가 피어올랐다. “연기가 재미있어요. 힘들어도 재미있어서 하는 거죠.”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계기도 신앙과 연관이 있다.

연기를 시작한 지 3년 차 되던 해 그는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면서 스스로가 혼란스러웠다. 자연스레 냉담을 하던 중 사장 어른의 권유로 참여한 성령세미나는 제2의 신앙생활을 하게 했다. “휴대폰도 반납한 채 종 치면 밥 먹고, 종 치면 기도하고 나눔하고 이런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그분의 음성을 들었던 것 같아요. ‘연기 계속 하라’는 말씀을요.” 이후 그에게 연기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 됐다. “연기는 저와 애증 관계에요. 너무나 사랑하지만 저를 많이 힘들게 하는, 그러나 결코 놓을 수 없는 연인 같이요.”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


변진수씨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는 ‘사람’이다. “코로나19 이후로는 어려워졌지만, 이전에 생일 파티를 열면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줬어요.” 배우를 넘어 꿈이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하고, 놀고, 먹고, 서로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삶이다.

변진수씨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도 이와 관련돼 있다.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이라는 작품이다. 혈연관계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주제다. 영화 주제처럼 그도 누군가에게 가족이 되고자 노력한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신청을 했어요. 봉사단체도 만들어 활동했고요. 영화 출연료를 받으면 일부라도 본당에 기부하려고 해요.” 최근에도 촬영을 마치고 받은 출연료 일부를 서교동본당에 기부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취향에서도 드러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요. 주로 따뜻한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나 봐요.” 영화 대사가 아닌 자신의 속내를 밝히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얼굴을 붉힌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말에는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묻어났다. 늘 따뜻한 자세로 이웃을 사랑하는 영화배우 변진수. ‘인생’이란 그의 영화에서만큼은 천만 배우로 불리는 이유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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