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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할 땐 진실하고 따뜻하게 사실만을 말하세요”

“대화할 땐 진실하고 따뜻하게 사실만을 말하세요”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8. 험담이나 비방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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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발행 [1676호]
▲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남을 험담하고 비방했던 사실을 고백한다. 극단적인 말보다, 말의 양보다 전하는 말의 질과 내용이 중요하다. 【CNS】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한 주간 내내 성인의 말씀이 저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고 뇌리 속에 남아 있었어요.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이 대부분 험담과 비방에서 비롯된다는 것. 가만히 돌아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대부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면 단골 레퍼토리처럼 떠오르는 것도 역시 말로 짓는 죄였습니다.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서럽고 그래서 그 누군가의 흉을 찾아내어 보태고 붙이면서 북받치고 꼬인 감정을 풀어내려 했지요. 하지만 그 순간은 시원하게 털어버린 것 같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우울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요. 궁금합니다. 이 세상엔 정말 남 이야기 절대 안 하면서 말로 죄짓지 않는 사람 있을까요? 사실 남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성녀 같은 사람이 제 주변에 있습니다.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그런데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이상하죠? 자기에게 엄격한 성인 같은 그 사람의 얼굴은 빛이 나기보다 어두워 보였거든요. 그에게 무척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절대로 그 사람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때론 차라리 욕이라도 하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정말 험담이나 비방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인의 지혜를 구하는 김 수녀가 여덟 번째 편지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말’은 선물이며 생명의 도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이 되고 생명을 죽이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말로 죄를 짓고 말로 상처를 입기도 해요. 물론 이 시대만의 이야기도 아니고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을 하는 우리의 혀는 자칫 뱀의 혀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뱀의 혀는 둘로 나누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험담을 할 때마다 듣는 사람의 귀에 독을 넣어주게 돼요. 또 다른 혀는 물론 비방당하는 사람의 명예에 독을 넣게 되겠지요.

어떻게 해야 험담을 안 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지만 우선 자신이 하는 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할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좋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생각해보면 그것도 유혹입니다. 그냥 좋다고 하면 나도 좋은 사람인 거 같거든요. 김 수녀가 만난 성녀 같은 그 사람, 절대 험담하지 않고 긍정적인 말만 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기 때문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남에 대한 흉을 보는 자신이 정직하다고 말하거나, 또 어떤 이는 허영에 빠진 사람에게 트렌디하다면서 부추기거나 둘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루머에 집착해 험담하거나 반면에 그 루머를 듣고도 모른척하거나, 혹은 좋은 것만 말해도 모두 다 사실과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봐요.

누군가에게 타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을 때 먼저 판단하기보다 그 말이 과연 사실인지를 알아보면 어떨까요? 혹시 사실이 아니라면 그 사람을 위해 해명도 해줄 수 있고요. 물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겠지만요.

거짓은 거짓이고 악은 악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해줄 때는 정말 많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요. 타인의 흉이나 험담을 하지 않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 당사자에게 그 잘못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험담이나 비방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하기에 누구나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녔으면 해요. 둘째는 마치 수술칼로 힘줄과 신경을 분리하는 외과 의사처럼 가능한 정확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행동 자체만을 이야기합시다. 사실에 티끌만큼이라도 보태거나 빼서도 안 되겠지요. 그때에는 결코 어제의 일로 현재의 행위를 단정하거나 과거를 추측해서도 안 되고 미래도 상상하지 않았으면 해요. 셋째는 그 사람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급하게 판단하려 하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요.

마지막으로 노파심에 한마디 더 할게요. 때론 ‘말로 죄를 지을 바에야 차라리 할 말만 할게요’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또한 유혹입니다. 험담을 멈추는 것이 어려우니 아예 안 하겠다는 극단적인 태도는 피했으면 해요. 사실 현인들이 ‘말은 가능한 한 적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무익하고 해로운 말을 줄이라는 뜻이지요. 말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해야겠지요. 다만 대화를 할 때엔 진실하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단순하게 사실만을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으로 사시길!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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