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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난민 정착기] 주경야독 '한국어 공부 삼매경' ... 이땅에서 살아야 하니까

[대한난민 정착기] 주경야독 '한국어 공부 삼매경' ... 이땅에서 살아야 하니까

[2부 말해야 산다] 한국어 익숙한 난민 2세대, 또래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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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발행 [1674호]

 

▲ 이집트 출신 난민 인정자 샤이마 사이드씨의 한국어 교재에 필기가 빽빽하다.

 

1194명. 2022년 4월 기준 대한민국이 인정한 난민의 수다. 전체 난민 신청자의 단 1.5%. 이 땅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을 우리는 ‘대한난민’이라 부르기로 했다. 전쟁과 종교, 인종,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난민은 계속 늘고 있다.
 

한국은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까. CPBC는 난민 인정자, ‘대한난민’에 주목했다. 그들은 수많은 난민 신청자가 꿈꾸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4~6월, 전국에 흩어져 사는 대한난민을 만났다. 난민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지면에 연재한다.


 기획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대한난민 정착기’를 인터랙티브로 구현한 홈페이지(2022refugee.cpbc.co.kr)로 연결됩니다.
 

https://www.cpbc.co.kr/html/2022refugee/episode2.html

 

 

2부  말해야 산다
 

 

▲ 난민과 이민자들이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에 참여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수업 현장

 

어설픈 한국어 발음이 김포외국인지원센터 2층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강의실은 빈자리 없이 빽빽했다. “안녕하세요. 고천이에요. 여러분, 한 번 더 같이 읽어요. 크게 따라 읽으세요.” 외국인 수강생들이 강의실 스크린에 적힌 문장을 느릿느릿 따라 읽는다.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수업 현장이다. 한눈파는 사람 하나 없이 수강생들은 수업에 집중했다. KIIP는 난민이나 이민자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익히고 적응하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다. 법무부가 운영하며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이에요’와 ‘예요’를 잘 구분해야 해요. 한번 써볼까요.”
 

강사의 말에 꽃이 그려진 방글라데시 평상복을 입은 바루야 프리티씨가 공책을 펼쳤다. 줄에 매달린 음표처럼 비뚤배뚤 쓰인 한글이 한바닥 가득하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Jumma)인’* 출신 바루야씨는 남편이 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2018년 한국에 왔다.
 

바루야는 ‘대한난민’이 된 지 4년이나 됐지만, 출산 후 육아에 매진하다 이제야 처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다. 남편은 먼저 KIIP를 수강했다. 바루야는 “한국말이 정말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줌머(Jumma)인=방글라데시 소수민족으로 차크마, 마르마, 트리푸라 등 11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이슬람교 신자가 90%인 방글라데시에서 불교·힌두교·기독교를 믿는 줌머인은 박해를 받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에서 계속 살려면

꼭 한국어를 배우라고 했어요.

귀화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난민 인정자에겐 KIIP 혜택이 적용된다. KIIP의 모든 단계를 통과하면 귀화 시험이나 체류자격 변경 시 가점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줌머인 강도나씨도 남편이 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대한난민이 됐다. 도나씨는 KIIP의 도움으로 귀화와 취업에 성공했다. 도나씨가 처음 한국에 왔던 2005년엔 KIIP 프로그램이 없었다. 도나씨는 외국 생활에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 온 지 사흘 만에 동국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 등록했다. 수강료만 100만 원이 넘었다.
 

 

“한국어로 인사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어학당을 찾았어요.

제가 사는 경기도 김포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충무로까지

왕복 4시간씩 오가며 공부했어요.”

 

 

KIIP는 2010년부터 시행됐다. 그땐 이미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알았지만, 도나씨는 귀화를 위해 KIIP를 등록했다. 덕분에 도나씨는 김포외국인지원센터와 김포고용센터에서 벵골어 통역사로 일할 수 있었다. 도나씨는 “KIIP는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국적 취득할 때도 좋고, 일자리 구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KIIP 모든 단계를 이수하면 한국어 구사와 사회 적응이 수월한 게 사실이다. 10년째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온 김영미(마리아) 강사는 “KIIP를 최대한 빨리 접할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일터에서 한국말을 배운 외국인들은 업종 용어만 사용해요. 읽기와 쓰기, 말하기, 듣기를 모두 체계적으로 배워야 언어 구사에 확장성이 있어요.”

 
 

▲ 방글라데시 줌머인 출신 난민 인정자 바루야 프리티씨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수험생처럼… 6일 일하고, 하루 공부  
 

KIIP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이 KIIP를 수강하기란 녹록지 않다. 일단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대부분 주 6일씩 일하는 상황에서 주말 하루 짬을 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강의를 듣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KIIP는 총 515시간에 달하는 장기 프로그램이다. 6단계 과정**으로 모든 단계를 마치려면 1년 8개월이 걸린다.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평가시험도 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해당 단계를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KIIP를 운영해 온 지난 10여 년간 KIIP를 이수한 난민 인정자는 135명(11.3%)뿐이다. 김영미 강사는 “교육 시수도 많고, 시험이 어려워 수강생들이 과정을 모두 완주하는 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6단계 과정=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의 0~4단계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5단계는 ‘한국사회 이해’ 과정이다.

 

 

난민 신청자 대부분 난민 심사를 받으며 평균 3~4년간 국내에 머물게 된다. 이 기간을 활용해 입국 때부터 KIIP를 듣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난민 신청자를 KIIP로 유인할 요인은 없다. 한국이민재단 채보근(유스티노) 본부장은 “난민 신청자가 국내에 단기간 머물더라도 그동안 말을 배워두면 적응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며 “KIIP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임시 체류 기간을 연장해주는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난민 변호를 하는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는 “난민 대부분 KIIP를 잘 모른다”며 “난민 신청자에게 적극적으로 과정을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니제르 출신의 난민 인정자 루카야 압둘라이씨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이슬람 여성 루카야의 뒤늦은 배움
 

대한난민 중에는 KIIP에 접근조차 불가한 이들도 있다. 집에서 만난 루카야 압둘라이씨는 가방에서 한국어 문제집 몇 권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방에서 다 푼 문제집도 자랑스레 들고나왔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우냐고 묻자 루카야씨는 세 손가락을 피면서 한국말로 더듬더듬 답했다. “세 곳에서. 이태원, 한남동, 이촌.”

 

루카야씨가 ‘서강 한국어’ 문제집을 펼치더니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남편 세이니 압둘라이씨는 그런 부인을 잠시 보다가 무심하게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과정에 활용되는 한국어 교재.

 

니제르 출신의 루카야씨는 남편 세이니씨가 2007년 난민 인정을 받으면서 자녀들과 함께 대한난민이 됐다. 남편은 자동차 무역을 하며 한국어를 익혔고, KIIP도 이수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도 한국어가 유창하다.

 

하지만 루카야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귀화도 하지 못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슬람 국가의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권영실 변호사는 “일부 문화권에서 여성의 외부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난민 여성은 때때로 여성 모임에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가 함께 수업받는 KIIP 수강을 남편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난민 여성은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한 수업을 대안으로 찾는다. 하지만 한국인 배우자를 둔 결혼 이주 여성 틈에서 난민은 또 다른 이방인이 된다. KIIP는 교육 과정이 정해져 있지만, 결혼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은 지역별로 교육 수준과 운영 지원 등의 편차가 크다.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으면 수업 적응은 전혀 쉽지 않다. 루카야씨는 “한국에 아는 니제르 난민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민 여성에게 한국어 교육은 꼭 필요하다. 집안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다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난민 여성은 자녀의 학업을 도울 수도, 다른 학부모와 교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루카야가 늦게나마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것도 4명의 자녀를 이해하고 싶어서다.
 

 

“한국어를 빨리 배워서 사춘기 큰 아들을 이해하고 싶어요

학교 담임 선생님도 만나보고 싶고요”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이들과 직장 일로 평소 시간을 내기 어려운 난민을 위해 온라인 한국어 수업의 문턱을 크게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KIIP가 전면 시행되긴 했지만, 여전히 난민에겐 진입장벽이 높기만 하다.

 

KIIP는 사회통합정보망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으로만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통합정보망 홈페이지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안내가 전혀 없다. 권영실 변호사는 “난민만을 위한 특별 과정 개설은 어렵더라도 온오프라인 교육을 받도록 알리고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 양산 서창초등학교 1학년 1반에 재학 중인 노라이양이 수업을 듣고 있다.

 

양산 서창초 1학년, 노라이
 

노라이양이 토끼가 그려진 다홍색 책가방을 메고 들썩거리며 집을 나섰다. 히잡을 쓴 엄마, 전동 킥보드를 탄 아빠와 함께였다. 아침 7시 50분. 초등학생이 등교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노라이는 엄마의 출근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간다. 노라이양은 부모가 난민 인정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대한난민이 됐다.
 

양산 서창초등학교 1학년 1반 교실엔 벌써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도착해 있었다. “노라이다!” 친구들이 노라이양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1학년 1반에는 노라이를 포함해 외국인 학생이 3명이나 된다. 양산 서창초는 이 지역에서 다문화 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다. 전교생 334명 중 56명(16.7%)이 다문화 학생이다. 한 반에 4~5명의 외국인 학생이 있는 셈이다. 양산 서창초는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 교과 과정을 따라가기 힘든 학생들은 한국어 교실을 따로 마련해 뒀다.



3살 때 이집트를 떠나 한국에 온 노라이양은
사실 아랍어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하다.

 

“오늘은 숫자 읽기 계속할 거예요. 여러분, 이거 어려워했죠. ‘스물, 서른, 마흔, 쉰.’ 선생님이 숫자 가리키면 한글로 말해보세요.”
 

교사가 손가락으로 칠판의 숫자를 짚을 때마다 학생들이 큰 소리로 숫자를 읽었다. 교사가 숫자 40을 가리키자 노라이양도 자신 있게 “마흔!”을 외쳤다.
 

‘난민법’과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난민 아동은 난민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 물론 학교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노라이의 부모는 양산으로 이사하자마자 노라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부터 수소문했다.

 

▲ 자습 시간 중 한글 교재를 푸는 노라이양.

 

난민 인정과 불인정, 교육지원 달라

 

난민 인정 여부에 따라 교육 지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료인 방과후학교의 교육비 지원 대상***은 난민 인정자만 해당한다. 노라이 부모는 난민 인정을 받기 전까지 거취 문제와 노라이의 교육비로 고민이 많았다.

 

난민 아동에 대한 교육권은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빠 칼리드씨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땐
언제든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면서
“방과후 학교 수업료도 부담이었지만,
혹시라도 쫓겨나 노라이의 학업이 중단될까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노라이양은 방과후학교에서 통합미술 수업을 듣고 있다. 같은 반 친구 민지양은 교실 벽에 걸려 있는 노라이의 그림을 가리키며 “노라이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고 말했다.
 

 ***교육비 지원 대상=법무부 장관의 추천을 받은 난민 인정자는 방과후학교의 수강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난민 인정자는 법무부에 직접 교육비 지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평소 말수가 적은 노라이양은 교실에서만큼은 친구들과 명랑하게 웃고 떠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말을 잘하지 못해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다. 짓궂은 한 친구가 “너는 먹을 것 없는 아프리카에서 왔지”라며 노라이를 비웃기도 했다. 부모는 속상해하는 노라이에게 “대응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제 노라이양은 그런 놀림에 개의치 않다.
 

같은 반 친구들은 피부색이 다른 노라이양이 어디에서, 왜 한국에 왔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나현 담임교사는 “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많다 보니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 경계심이나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며 “노라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총괄팀장 : 백영민, 기사 : 박수정·전은지·김형준·이학주, 사진 : 남궁현, 웹페이지 : 전기환·임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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