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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0주일 -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려는 ‘분열’의 숨은 뜻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0주일 -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려는 ‘분열’의 숨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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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발행 [1674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불’과 ‘분열’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불’은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자비의 선물을 가득히 받은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자발적 의지와 굳은 결심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신, ‘하느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는 상태’인 겁니다. 우리 마음이 그런 상태가 되어야만 주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복음이 우리 삶에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꿈꾸시는 ‘사랑의 복음화’는 이루어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억압하고 희생시켜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건 쉽지만,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간직한 채로 조화와 화합을 이루는 일은 참으로 어렵지요. 상대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배척하여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우리 곁에서 지켜보시는 예수님은 마음이 참 슬프고 안타까우실 겁니다. 우리가 그 과정을 잘 극복하고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참된 진리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혹시 그 과정이 잘못되거나 우리가 중간에 포기하여 나아갈 길을 잃고 극심한 혼돈 속에서 헤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마음이 무겁게 짓눌리실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된 평화를 찾는 여정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참된 평화는 오직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과 주님 안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이 서로 갈라져 분열이 발생하더라도,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덮어둘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교묘하게 작용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거짓 평화는 철저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귀찮고 고생스럽더라도 매 순간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선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려는 ‘분열’은 그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갈라쳐 적대시하게 만들려는 갈등 조장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에 맞는 것과 거스르는 것을 올바르게 식별하고, 죄악을 단호하게 배격하며, 그분 뜻인 사랑과 자비를 더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실천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입니다. 겉으로 평화처럼 보이는 것이 전통과 관습이라는 형태로 굳어졌을지라도, 그것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수긍할 게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며 변치 않는 진리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 행동이 기득권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우리를 모함하고 핍박할지라도, 나태와 안주와 야합의 가면은 가차 없이 찢어버리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맨얼굴로 주님 앞에 당당히 서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세상의 논리에 대충 타협하여 진실을 외면하고 진리에 귀를 막으면 당장의 삶이 시끄럽거나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주하며 살다가는, 우리가 못 본 체하며 방치한 그 부정과 불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우리 자신을 덮쳐오게 되겠지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한 시간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매정하게 등 돌리던 이들이 ‘미안하다’고, ‘진짜 그런 줄 몰랐다’며 되돌아와 주님 앞에서 눈물 속에 서로를 얼싸안을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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