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3. 하늘 본향을 갈망하는 사람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3. 하늘 본향을 갈망하는 사람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Home > 사목영성 >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022.08.07 발행 [1673호]

방 온도가 35℃까지 올라갔다. 선풍기가 정말 열 일을 하지만 공기는 여전히 뜨끈하다. 잠잘 때는 선풍기로도 모자라 얼음팩을 수건에 싸서 몸을 식히는 데에 이용하곤 하는데 아주 괜찮은 방법이다. 시골살이할 때에는 온종일 땀투성이 일복으로 지내다가 저녁나절 선선한 밤 그늘로 들어가니 그저 밤이 고마울 따름이었는데, 도시에서는 한낮에 곳곳마다 에어컨 바람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그런지 밤 그늘의 서늘함이 덜 만족스럽게 다가오는가 보다.

지난달에 아버지께서 아주 위독하셨다가 고비를 넘기고 조금 나아지셨을 때에 아버지께서 “나 또 살아왔네. 이제는 하느님께서 데려가셨으면 좋겠어. 수녀님이 아버지 살려달라고 너무 기도 열심히 하는 거 아녀? 이제 가야지. 안 그려?” 말씀은 많지 않으셔도 워낙 유머가 있으셔서 당신의 어려웠던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하셨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평안하게 하느님 품으로 가실 수 있도록 기도했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아버지”를 계속 부르고 싶은 바람으로 살아계시기를 바랐었다. 나는 언니들처럼 자주 찾아가 뵐 수도 없고, 특별히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성 요아킴 축일에 아버지는 하늘로 돌아가셨다. 전날에 나는 일이 있어서 멀리 부산에 있었는데,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온 가족과 인사를 나누시고 내가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게 되었다. 언니들이 “아버지께서 수녀님 보고 싶으셔서 기다리고 계셔. 지금 엄청 힘드신데 수녀님 보고 가시려고 힘들게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 코로나19가 재유행 될 것을 우려한 병원에서는 두 사람씩만 병실로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병실에 들어갔다. 앙상한 뼈만 남은 아버지께서 숨을 몰아쉬시면서 나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양손에 힘을 주셨다. 나는 아버지께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이제 평안해지실 거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께서 바라셨던 하느님 품으로 가시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수고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라고 불러주실 거예요. 계속 주님의 기도를 바치시면 하느님께서 아버지를 알아보실 거예요.” 어머니는 소리도 못 내고 흐느끼셨다. “여보, 미안해.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께서는 계속 뭐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세례명이 요아킴이라, 성 요아킴 축일에 돌아가신 것이 축복으로 다가왔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 가족은 각자가 아버지와 함께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살아계실 때보다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아무에게도 탓하지 않고, 당신이 감수하시며 살아오셨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모였다. 어떻게 그 엄청난 이야기들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며 오실 수 있으셨을까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야기에 연결된 분들이 찾아오셔서 꺼이꺼이 울고 가셨다.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기억하며,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더욱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남겨주시고 싶으신 유산이 무엇인지를. 형제들이 오순도순 사랑하며 지내는 것, 그 어떤 어려움도 이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다.

문득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보다가, 92세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주어진 숨을 충실히 끝까지 쉬며 인내와 침묵으로 하느님 뜻 찾으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예수님과 일치되어 보였다. 수녀 딸의 첫서원 이후로 하느님 부르심 들으시고 세례로써 하느님을 섬기게 되신 후로 한결같이 오롯한 마음으로 새벽 네 시에 촛불을 밝히시고, 합장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하늘 본향을 갈망하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내 마음에 살아 있다. “아버지, 막내딸이 아버지 많이 사랑해요.” 이렇게 인사드리면, 으레 “나도 많이 사랑해요”라고 말씀해 주셨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