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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5.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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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 발행 [1673호]
▲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는 태양과 같이 절대적 존재인 하느님을 바라보며 빛나는 희망을 꿈꾼다. 한 가족이 해변가에서 해가 뜨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지금 지구 상에 일어나고 있는 고통스러운 저희의 현실을 성인께서는 잘 알고 계시지요? 이곳은 코비드 팬데믹과 마스크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답니다. 늘어가는 확진자 숫자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새롭지 않은 우리들의 암울한 현실이 아닌가 싶어 슬퍼집니다. 게다가 국내외 경제 불안까지 겹쳐 ‘지금은 희망이 없다’며 불안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종교인으로서 위기는 기회이고, 우리에겐 늘 희망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반드시 주님께서 함께 해주신다고요. 그런데요. 솔직히 그런 제 말이 저 자신조차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성인께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인께서 저희에게 희망의 힘을 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하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



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팬데믹과 경제 불안으로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는 늘 그렇게 질병에 지배되고 또 그것을 극복하면서 뚜벅뚜벅 걸어온 것 같습니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하여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암흑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라는 끔찍한 전염병이 있었지요. 미지의 전염병은 우리를 공포로 몰고 갔지요. 하지만 죽음의 팬데믹도 결코 우리 인류를 멈추게 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그 자체로 엄청난 불안이었지요. 그런데 우린 그때 깨달았어요.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그러면서 과학과 의학에도 눈을 뜨게 되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희망했습니다. 어떻게요? 희망은 막연한 내일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요.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여기잖아요. 물론 현실에 머물러 집중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요. 차라리 과거를 회상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가 더 쉬울지도 몰라요. 게다가 현실에 충실하고 여기에 집중하는 일은 대단한 에너지와 노력을 요구하니깐요. 그런데요. 만약 우리가 과거에 대한 근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 여기에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계십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닙니다. 만약 지금 여기에 내가 없다면 하느님도 잃게 됩니다. 지금 현재가 없으면 과거도 미래도 없잖아요. 영원의 씨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품고 있어요.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하느님 왕국을 소유하고 체험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면 물론 내일도 돌보시지 않겠어요? 그러니 근심과 걱정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만약 내일 어려운 일이 닥치면 견뎌낼 힘도 주시리라 믿으면서요.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폭풍이 일면 물 위를 봐야 할까요? 하늘을 보아야 할까요? 하늘을 바라보겠지요. 그리고 어두운 먹구름 보다 그 속에 밝게 빛나는 태양의 존재를 믿어요. 물론 우리는 하늘색이 변하면 비가 올 것으로 생각하고 불안하지요. 하지만 태양의 색이 변한 것은 아니에요. 태양은 늘 그대로 밝게 빛나고 있으니깐요. 붉거나 혹은 회색빛의 하늘은 그저 우리가 보이는 것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색의 밝고 어둠은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이니까요.

세상에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태양이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변하지 않지만 다양하게 보이듯이 우린 그렇게 하느님을 바라보기도 해요.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여행자는 태양이 비추는 대낮에는 자고 어두운 밤에 위험한 산길을 걸으면서 왜 빛을 주지 않냐며 태양을 원망하기도 해요. 해가 있을 때 움직이지 않다가 어두운 밤, 죄 속에서 잠을 잔 거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도 어두운 밤 위험한 산길을 걷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면서 왜 빛이 없냐며 어두워 볼 수가 없다고 주저앉아 한탄하고 불평하며 좌절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럴 때마다 기억하면 좋겠어요.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요. 내가 돌아서면 어둡고 다시 돌아서면 밝게 빛나요. 무엇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하여 있느냐에 따라 희망의 빛이 비추어지리라는 것, 기억했으면 해요.

예수님으로 사시길(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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