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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심은 사랑과 애덕에서 피어나는 불꽃”

“참된 신심은 사랑과 애덕에서 피어나는 불꽃”

[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2. 참된 신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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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0 발행 [1670호]
▲ “참된 신심은 사랑과 애덕에서 피어나는 불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만난 신자들을 포옹해주며 친교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

안녕하세요. 한 젊은이가 찾아왔어요. 주위에서 한 신심 단체를 소개받고 들어갔는데, 선배들의 가르침이 의무와 책임처럼 느껴져 힘들었답니다. 지금은 ‘신심’이란 말만 들어도 답답하고 거부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그 젊은이가 성인께서 말씀하신 ‘신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는 않아도 거부감만이라도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성인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반갑고 기쁘면서도 솔직히 살짝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오히려 더 거리를 두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신심은 어떤 행위 자체가 아닌 사랑으로 드러나는 총체적인 삶의 양식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니깐 신심의 어떤 행위도 일상에서의 가정이나 이웃에게 평화를 깨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착한 그리스도인과 좋은 사람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거겠죠. 그런데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때론 잘 살지 못하지만, 기도라도 열심히 하면 나 자신에게 만족스럽고 위로가 돼요. 반면에 기도는 잘 못해도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면 은근히 ‘나 이런 사람이야!’하는 자부심도 생기고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신심’은 그 어떤 기도나 행위 자체가 아니라는 건데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애덕의 행위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것도 자주 일상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참된 신심을 사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 아닌가요? 저를 찾아온 젊은이나 수도자인 저 역시 신심을 제대로 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관적인가요? 성인의 답이 벌써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굿바이 미소를 보내드리며 다음 편지 손꼽아 기다릴게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사랑하는 김 수녀 올림



사랑하는 김 수녀에게

김 수녀의 진심이 담긴 솔직한 편지 고마워요. 완벽한 사람만이 참된 신심을 살 수 있냐고요? 신심은 사랑과 애덕에서 피어나는 불꽃이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적인 불이고, 신심은 여기에서 타오르는 불꽃이기에 그 어떤 것도 분리할 수는 없어요. 당연히 완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완벽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런데요. 안심하세요. 다행히도 우린 이승에서 사랑을 시작하지만 결국 저세상에 가서야 그 사랑이 완성되지요. 우린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돼요. 새벽이 한순간에 어둠을 몰아내지 않듯 시간이 필요해요. 무언가 잘 안 되는 거 같고, 신앙인으로서 수도자로서 잘살지 못하는 것 같아도 서서히 날은 밝아옵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울지도 몰라요.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다만 용기를 내고 절대 포기하지는 말아요.

사람들이 날 온유의 성인, 혹은 친절한 신사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상황에 그런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느냐’며 따지기도 해요. 그런데 난 본래부터 부드럽고 온유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괴팍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 거친 성격을 다듬고 극복하는 데 20여 년이 걸렸어요.

벌이 한 숟가락의 꿀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아세요? 꿀벌 한 마리가 하루에 찾아가는 꽃은 최대 3000개, 꿀주머니 가득 채우려면 보통 1000개 이상 방문해야 한다고 해요. 상상이 되나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모은 꿀을 우린 한순간 홀딱 먹어치우잖아요. 마찬가지로 20여 년간 나의 완고하고 괴팍한 성격을 엄청난 노력으로 친절과 온유로 변화해 왔는데, 한순간에 화난다고 인내하지 못하면 얼마나 허망하겠어요.

물론 왜 유혹이 없었겠어요? 고백하자면 나의 이 괴팍한 성격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기도 했어요. 젊은 사제였을 때 샤블레 지방의 칼뱅파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에 열정적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때 잠시 공권력을 이용하는 데 동참해서 선교한 적이 있어요. 전 그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며 결심했어요. 절대로 강요나 힘이 아닌 사랑과 온유함으로(all by love, nothing by force) 듣고 말하겠노라고.

마지막으로 ‘신심’ 하면 답답하다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도 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석을 꿀에 담그면 보석의 특성에 따라 광채가 더 밝게 빛난다고 했어요. 우리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존재이지요. 그런 우리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신심이란 것,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다음 편지 기다리며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굿바이 사랑을 보내요.


예수님으로 사시길(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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