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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 단호한 의지와 굳은 확신으로 나아가기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 단호한 의지와 굳은 확신으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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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발행 [1668호]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즉 그분의 뜻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주님을 따른다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고집하는 완고함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의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그들을 불살라버리자고 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한 저 못된 사마리아 놈들은 불로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앞세워 자기들의 뜻을 강요하고 거기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는 폭력은 예수님께서 걸으시려는 용서와 사랑의 길에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자기가 걸으려는 길이 어떤 길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섣불리 뛰어드는 성급함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의 길을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세속의 길과 구분하지 못할 때, 어서 빨리 공을 세워 주님 앞에 이름을 떨치고 싶은 조급함에 그러는 겁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면 성공이라는 탄탄대로가 보장되듯, 하느님 나라에서도 어떻게든 내 이름을 떨치면 구원이 보장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무작정 당신을 따르겠다고 달려드는 그를 만류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잠시 머리를 기대고 앉아 쉴 여유를 가지기조차 어려운 ‘고난의 여정’이니, 어떻게 해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을지를 잘 따져보고 준비하라는 배려인 겁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 편에서 브레이크를 겁니다. 한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믿음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기본도리조차 다 내팽개치라며 맹목적인 신앙을 종용하신 게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죽음의 어둠 속에 안주하려는 나태함에서, ‘인간 된 도리’라는 그럴듯한 핑계 뒤에 숨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완고함에서 당장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한편, 또 다른 사람은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가족과의 인사가 ‘먼저’라고만 할 뿐, 그 관계를 잘 정리하고 ‘반드시’ 주님을 따르겠다는 명확한 의지표명은 빠져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세상에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엘리야를 따라나선 엘리사의 모습과 사뭇 대비됩니다. 엘리사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자기가 소유했던 소와 쟁기를 처분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실행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엘리사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스승인 엘리야를 따르며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다 하게 되지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일단 신앙이라는 쟁기를 붙들었으면 부질없는 집착에 자꾸 뒤돌아보며 후회할 게 아니라 단호한 의지와 결심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구원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확신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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