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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6주일 - 주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평화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6주일 - 주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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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발행 [1663호]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석 달이 되어갑니다.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큰 고통을 겪고 있지요.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들이대며 합리화하려고 해봤자, 전쟁의 본질은 ‘힘’과 그 힘이 초래하는 ‘폭력’입니다. 더 센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이 그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억지로 굴복시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드는 겁니다.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원리처럼, 승자만이 제 욕심을 채우고 약자는 모든 것을 잃는 가혹한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서글픈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강한 힘을 기르는 데에 열중합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며,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세상은 서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가 만들어 놓은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릅니다. ‘너한테 피해 주지 않고 잘 살 테니 너도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런 ‘각자도생’의 모습이 언뜻 합리적인 처사처럼 보이지만, 나만 잘살겠다는 왜곡된 개인주의는 결국 이기주의로 변질되고, 세상에 그런 이기주의가 만연하면 마지막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질 겁니다. 서로가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된 이 세상에서 혼자만 편안하게 잘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댐에 작은 균열만 생겨도 엄청난 수압이 몰려 전체가 무너지듯,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지구 어딘가에 절망이라는 구멍이 뚫리면 그 효과는 금세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코로나가 그랬듯 말이지요.
 

예수님은 각자도생의 모습이 참된 평화와 다름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이 지향하시는 평화의 근본원리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는 힘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실수해도 격려받을 수 있음을 알고,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알며, 상처 입어도 치유받을 수 있음을 압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자신이 돌아갈 데가 있음을,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께서 언제든 나를 받아주시고 위로해주실 것임을 알기에, 이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고 상처받아도 그 희망으로 그것들을 이겨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조건 없는 충만한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고 해서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일임을, 따스하고 편안한 그분 품 안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삶을 새로 시작하는 일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참된 사랑의 깨달음을 통해 이르게 되는 내적 평정심의 상태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고자 하시는 참된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먼저 그분을 제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먼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응답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개인들만 가득한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웃 형제자매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이들 가운데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며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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