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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정보 위주로 기술, 누락된 초기 교회사 보완할 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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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96·끝> 「눌암기략」과 「송담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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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4 발행 [1659호]
▲ 이재기의 「눌암기략」과 강세정의 「송담유록」(연세대 도서관 소장) 표지. 오른쪽 본문 사진은 「눌암기략」 중 이존창·홍낙민 관련 대목이다.



신서파와 공서파의 중간 기록

신서파와 공서파의 첨예한 공방 속에 남인 내부의 입장도 갈렸다. 기록은 공서파의 것만 남았다. 신서파의 기록은 제대로 남은 것이 거의 없고, 남았더라도 자기 검열을 거쳐 오염된 자료가 많다. 공서파의 기록은 이기경의 「벽위편」이 가장 중요하다. 역시 이기경이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사학징의」도 중요하다. 이밖에 중간에서 어느 한쪽에 얼마간 기운 기록들이 존재한다.

강세정의 「송담유록」과 이재기의 「눌암기략」은 일반에게는 물론 학계에 낯선 책이다. 그간의 연재에서 두 책의 내용을 수십 차례에 걸쳐 소개한 바 있다. 강세정(姜世靖, 1743∼1818)의 「송담유록」은 가문의 희망이었던 아들 강준흠의 정치적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는 곳곳에서 아들이 반서학을 외쳤을 뿐 채제공을 반대한 것은 아니란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또 아들 강준흠이 홍낙안, 이기경과 한 몫에 엮이는 것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상당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책은 필사본 1책 53장 분량으로, 그의 문집 「송담유고」 3책과 함께 현재 연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제껏 책의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재기(李在璣, 1759∼1818)의 「눌암기략」은 채제공을 중심에 두고 벌어진 대채(大蔡)와 소채(小蔡), 채당(蔡黨)과 홍당(洪黨)의 분화에 시선을 두고, 서학과 신서파의 행태를 비판적 시선에서 일화 중심으로 전달한다. 토막토막의 에피소드가 큰 흐름을 타고 이어진다. 필사본 1책 23장본이다. 여진천 신부가 「부산교회사보」에 전문을 번역 소개한 바 있고, 단행본으로는 간행되지 않았다.

「눌암기략」의 글씨가 작아서 두 책의 실제 분량은 비슷한데, 「송담유록」에는 뒤쪽에 황사영 「백서」와 몇 편의 상소문이 전재되어 있다. 두 책은 교회 창립기로부터 신유박해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반서학의 기조에서 채제공을 정점에 둔 남인 정파의 엇갈림과 신서파들의 동향과 행태를 고발하고 증언했다. 이승훈과 정약용 등 신서파의 주요 인물들의 동향과, 홍낙안 이기경 등 공서파와 빚는 갈등과 충돌의 현장 소개는 특별히 생동감이 넘친다. 이를 통해 당시 서학의 동향과 조직 관리, 서학을 바라보는 남인 내부의 시선, 당시 정파의 길항 관계와 정치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워낙 많은 데다, 얽히고설킨 인맥으로 자신들이 직접 견문한 사실을 충실하게 수록해서, 기존의 교회사에서 밝힐 수 없었던 내용으로 이 두 책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 많다.

두 책 모두 서학을 비판하고 반대했지만 입장과 논조는 사뭇 달랐다. 신서파를 공격하되 공서파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지닌 양비론적 입장을 취한 점은 같다. 채제공에 대한 입장에서 두 사람은 엇갈린다. 강세정은 자신의 부자가 채제공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음을 입증하는 데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재기 쪽은 좀더 비판적이었다.



책의 내용과 저자

「송담유록」에는 성호 일계의 서학에 대한 태도, 을사추조 적발 당시 참석자의 면면과 집회 광경, 그리고 이들의 소지품에서 나온 성패(聖牌)의 존재, 이존창이 속량 노비 출신이고, 1787년 신사원에게 처음 검거되었던 사실, 그리고 여사울이 예수골과 같은 의미란 내용 등이 나온다. 이밖에 홍교만 형제의 제사 거부, 정약용이 제사를 이유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 일, 이승훈 형제의 각종 권모술수의 행태, 이승훈의 평택 사건 처리의 내막, 사족(士族) 부녀자들의 신앙생활, 천주교 신자인 아들을 죽인 이익운의 이야기, 주문모 신부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 등등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하다.

또 「눌암기략」은 미강서원 문제로 불거진 대채(大蔡)와 소채(小蔡)의 분기로부터 글을 시작해서 채제공을 옹위한 신서파와, 채제공이 거리를 둔 공서파의 엇갈림을 다룬 내용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직접 만나 들은 다른 기록에 안 나오는 이야기들이 현장감 있는 대화체로 펼쳐진다. 이승훈과 정약용의 부친이 채당에 속했고, 이 같은 인연으로 이들 또한 채당에 들어가는 과정, 이후 진산사건 당시의 이면과 이승훈의 평택 사건의 배경도 분석된다. 또 이윤하와 홍시보, 강세정, 이원규, 목조영 등의 일화도 소개했다.

홍낙안, 이기경, 강준흠 등 공서파의 동향에 대한 정보도 가득하다. 특별히 채제공과 관련된 일화가 많다. 신서파들이 채제공의 서자를 다산의 서매(庶妹)와 혼인시키고, 서손의 과외 선생으로 홍익만을 소개해서 보험 들기를 한 내용과, 채제공이 신서파를 손절하려 했을 때 다산이 그의 아들 채홍원에게 가서 협박하여 위기를 모면한 일 등등 신유박해 이전까지 관변 기록에 없는 무수한 일화들이 나열되고 있어 초기 교회사 연구에 실로 보물 창고라 할 수 있다.

이재기와 강세정 두 사람의 관계는 어땠을까? 「눌암기략」에는 1799년 6월 19일에 회덕 현감으로 부임했다가 그곳 유림과의 마찰로 그해 12월에 기장으로 유배되었던 강세정이 떠돌이 식객 송진수에게 천주교 신자 중 알만한 사람 수십 명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주면서, 그를 선동해 통문을 돌리라고 사주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굳이 확인되지 않은 전언까지 거론한 것을 보면, 강세정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라 아들 강순흠(姜舜欽) 때문에 생긴 공서파 내부의 다툼에서도 이재기는 강세정을 비판하는 논조를 펼쳤다. 이재기는 강세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서학을 비판한 이재기의 주변에도 천주교의 그림자가 자주 비친다. 이재기는 황사영의 삼촌인 황석필의 딸을 며느리로 들였다. 이재기의 누이는 이승훈의 6촌인 이좌훈(李佐薰)의 며느리로 들어갔고, 이승훈 집안과는 선대의 외가가 겹치는 중표(重表)의 척분이 있었다. 한편 「사학징의」에는,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던 이재신(李在新)을 소개하면서 그가 이재기의 집안 동생임을 굳이 두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사학징의」를 엮은이가 이재기를 탐탁지 않아 했음을 시사한다. 이재기가 「눌암기략」에서 이기경과 홍낙안의 행태를 여러 차례 비난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컨대 이재기와 강세정 두 사람 모두 척사의 명분에 찬성한 점은 같다. 강세정은 아들 강준흠이 극렬 척사파인 홍낙안 이기경 등과 한 통속으로 몰려 반채제공의 오명까지 뒤집어쓴 것을 해명하려고, 채제공에 대한 입장과 반서학을 분리해서 보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재기는 천주교 집안과 사돈을 맺고, 이승훈 집안과도 가까웠기에, 이 같은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서파를 극력 배척하면서도, 홍낙안과 이기경의 간교한 행태 또한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기는 서학을 반대해 신서파의 미움을 받았고, 미온적 태도로 협조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을 배척한다는 이유로 공서파에게도 공격을 당했던 인물이다.



이승훈 형제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

두 사람 모두 이승훈 형제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보인 점은 입장이 같다. 「송담유록」은 이승훈의 동생 이치훈을 두고 가장 교활하고 사악한 자라 하였고, “이승훈 형제는 거짓말과 황당한 얘기로 갖은 방법을 써서 참소하고 이간질했다”고도 했다. 이 밖에도 두 형제의 여러 가지 악행을 고발했다. 「눌암기략」도 이승훈 형제가 음모술수에 능해 “한 세상을 교만하게 횡행하며 어떤 일이든 어려워함이 없었으므로 보는 자들이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다거나, “천하의 변괴로 못하는 짓이 없는 자들”이라고까지 말했다. 「눌암기략」의 다음 단락은 논조가 더욱 분명하다.

“정약용과 이치훈은 비록 사학을 두호한 죄가 있었지만 본래는 사적(邪賊)으로 다스린 것은 아니었다. 정약용은 국청에 들어와서 여러 사적들이 흉한 일을 행한 자취를 자세하게 진술하였다. 혹 사람을 물리쳐 줄 것을 청하고는 기찰하여 체포하고 붙잡아 조사하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했다. 말이 두 형에게 미치면 반드시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담당 관원이 이 때문에 낯빛이 흔들렸다. 이치훈은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며 스스로 자기가 척사한 일을 해명하려고 하면서 제 형이 숨긴 것을 많이 폭로하였다. 국문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그를 마치 개돼지처럼 보았다. 이 때문에 정약용과 이치훈이 형벌을 받은 것이 가볍고 무겁기가 현격하게 달랐다고 한다.”

실제로 두 책 속에서 확인되는 이승훈 형제의 행태는 도저히 신앙인의 행동으로 보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이승훈의 배교와 신앙 활동에 대한 평가를 다시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책 모두 주관적 감정보다는 객관적 정보 위주로 기술하고 있는 점은 사료적 가치를 높여준다.

「송담유록」과 「눌암기략」 이 두 책은 그간 학계에서 제대로 된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교회사뿐 아니라 당대 정치사의 흐름 이해와 남인의 위상 파악을 위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귀한 자료이다. 초기 교회사의 누락된 부분이 반서학의 입장을 지녔던 이들의 기록에 힘입어 충실하게 채워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지난 2년간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를 연재해 주신 정민 교수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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