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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그림, 글… 왜 도전하느냐고요, 가톨릭 문화 알리는 도구 되려고요

연기, 그림, 글… 왜 도전하느냐고요, 가톨릭 문화 알리는 도구 되려고요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1) 배우·화가 김현정 (아기 예수의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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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발행 [1649호]
▲ 김현정씨는 배우 겸 화가, 작가의 길을 걸어오며, 새로운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또한, 가톨릭교회 안의 청년으로 활동하며 가톨릭문화를 널리 전하는 도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김현정(아기 예수의 데레사)씨는 배우 겸 화가이다. 그녀는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서 배우로 열연했고 요즘에는 화가와 작가로 활동 중이다. ‘화가’ 하면 보통 미술을 전공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4년 서울대교구 홍보국이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 와 종군위안부를 주제로 한 연극 ‘나비’를 지원하면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김현정씨는 몇 년 전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신부님, 저의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데 출판사마다 거절하네요. 저는 꼭 내고 싶은데….” 수화기 너머로 수없이 거절 받았을 상실감과 그녀의 절실함이 느껴졌다. 내가 원고를 받아 훑어보니 정신적 방황과 고뇌의 연속, 어린 시절에 잃어버렸던 내면의 자아를 새로이 발견하고 삶의 안정감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나는 차동엽 신부에게 그 글을 보내 책으로 낼 수 있는지 부탁했다. 며칠 후 차 신부에게 연락이 왔다. “허 신부님, 내용이 신선하고 좋아요. 이런 가톨릭 청년은 우리 교회가 양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2014년 초 세상에 나온 책이 「랄라의 외출」이다. 「랄라의 외출」은 ‘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됐고, 책 속 그녀의 그림은 그해 봄 평창동 가나 컨템퍼러리에서 쟁쟁한 이왈종, 김경렬 화백의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 작가뿐 아니라 화가로서의 길도 연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근 영화와 명화를 다룬 예술 서적 「영화광입니다만, 그림도 좋아합니다」를 출간했고 디지털 페인팅도 배우고 있어요. 제 작품을 런던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 올렸는데, 6점이 팔렸어요. 작품을 화면상으로만 보고 구매가 가능하구나 싶어 디지털 페인팅을 배우게 됐죠. 그래서 블록체인(공공 거래 장부) 기술이 들어간 NFT(대체불가능 토큰) 시장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학원에 가보니 메타버스는 초등학생도 아는 기술이라 소외감이 들더라고요.



▶이 기술을 접목해서 작품을 널리 알리려는 거네요. 주로 그리는 그림은?

네, 맞아요. 저는 동양 공필화. 비단에 그리는 채색화를 주로 그려요.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순수 미술을 하면 ‘돈 못 번다, 굶는다, 큰일 난다’(웃음) 그래서 한복 만드는 것을 공부했어요. 의상과에 모델 수업도 있는데 우연히 피팅 모델을 할 기회가 있어서 운 좋게 청바지 모델을 하게 됐어요.





▶모델을 하고 연극과 배우 활동을 했어요?

모델 하면서 드라마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엔 ‘스톰’ 모델은 톱스타의 등용문 같아요. 열심히 했지만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 뉴욕 필름아카데미에 도전했어요. 미국에 8개월 정도 머무르며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연기를 배웠는데 저에게는 아주 큰 체험이었어요. 그때 사람과 세상, 사물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그리고 중요한 건 돌아오자마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거예요. 중학교 때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정작 세례는 24살에 받았어요. 미국에서 돌아와서도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당시 방송통신대 영문학과에 등록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때부터 배우 활동을 열심히 했네요?

다행히도 ‘광끼’, ‘아버지와 아들’ 등 굵직한 드라마를 통해 연기 경력을 쌓을 수 있었어요.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사사건건 삼순이를 괴롭히는 감초 같은 직장 상사 역으로 많은 분의 사랑도 받았어요.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역할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주인공을 정말 얄밉게 괴롭혔나 봐요.(웃음) 그러다 제 인생의 중요한 계기가 된 연극 ‘나비’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 연극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서울주보에 끼어있는 연극 광고지를 보았어요. 작품을 보고 너무 감동했고 ‘제 고민보다 더 큰 아픔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부탁드리고 참여하게 됐어요. 일제강점기 위안부를 다룬 연극 ‘나비’는 2005~2009년까지 공연했어요. 토론토와 밴쿠버에서 초청도 받고요. 당시엔 선구적 주제를 담은 작품이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나비’를 오랫동안 해서 뜻깊었고, 수요 집회도 열심히 나가고 성명도 발표했어요. 제 마음 안에 바람이 불었죠.



▶나비를 끝으로 활동을 잠시 중단했어요?

그때도 어렸지만 왕성한 활동 후에도(웃음) 허전함과 함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일종의 슬럼프였고 마음이 힘든 시기였어요. 그런데 마침 교구에서 실시했던 심리상담 강좌에 등록해서 강의도 듣고 상담도 받았어요. 그 결과 미술을 다시 하고 ‘내면아이’를 새롭게 만나는 제2의 삶으로 나아간 것 같아요. 그림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서울 아트링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 평창동 가나 컨템퍼러리에서 유명 작가들과 전시회를 하는 등 화가로서 보폭을 넓힐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중국으로 갔어요.


2015년에 서예를 배우러 갔어요. 공부하러 가겠다고 마음먹고 틈틈이 중국어도 공부했어요. 중국에 가서 운 좋게 중앙미술학원 출신 선생님에게 도제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제가 배우고 싶은 건 공필화였지만 서예, 도장 파기, 그림도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보려고 여러 박물관에 가고자 했어요. 지금도 중국어를 잊지 않으려 늘 공부하고 있어요. 베이징 주한 문화원에서 서예전을 했고, 중국 베이징 최초의 사립 비영리 미술관인 진르미술관에서 백남준 선생님, 이왈종 화백과 더불어 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교회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20대부터 일해서 청년문화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가톨릭의 청년문화가 저에겐 되게 건강하고 보편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1회 한국 청년대회도 참석하고,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셨을 때도 너무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가톨릭평화방송 등에 출연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요. 가톨릭문화에 줄곧 매료되었어요.



▶청년대회에 참여하면서 가톨릭문화에 매료된 거네요?


가톨릭문화는 배울수록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이고, 희생과 사랑의 공동체적인 것이 마음에 들어요. 가톨릭 공동체는 공동체지만 개성을 존중해 주잖아요. 그게 저에겐 매력적이에요. 지금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체험하기 힘들잖아요. 제가 있던 방송국은 마치 정글 같아서 그런 체험을 하지 못했어요, 저는 경험도 미천하고 어려서인지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에 상처도 많이 받았거든요. 내가 좋은 가톨릭 문화를 알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죽음의 문화가 있다면 반드시 선한 문화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도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청년봉사를 갔을 때 그런 생각을 강하게 했어요. 그곳에서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보는 체험은 나의 삶을 바닥부터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것은 많아요. 글쓰기는 계속하고 싶고요. 출판사에서는 그림 그리는 방법에 대한 책을 쓰라고 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은 작업에 필요할 것 같아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대화 중 갑자기 휴대폰 알람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끄고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작업하다 보면 기도를 지나칠 때가 많아 알람을 설정해두고 기도를 한단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참 든든했다. 계속해서 새로움을 향한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길 기도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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