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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이 보여준 나 자신으로 사는 법

[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이 보여준 나 자신으로 사는 법

백소연 레지나(가톨릭대 학부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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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6 발행 [1646호]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조는 2000년대 후반부터 역사드라마 안에서 매력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자주 소환됐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그는 세손 시절 폐세자가 될 위협에 시달렸으며 재위 후에 펼친 개혁 정책은 여러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독살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여러 장르 안에서 변주되어 왔으며 특히 그 행보는 지금의 현실 정치와 연관 지어 해석되며 더 많은 대중적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옷소매 붉은 끝동’은 좌절한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의 모습보다는 훗날 의빈 성씨가 될 궁녀 성덕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왕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는 길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최고의 성공으로 여겨질 법한 궁녀의 삶에서, 성덕임은 오히려 그 길을 거부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훌륭한 왕이 되려는 정조의 진정성에 감화한 덕임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제조상궁이나 대비의 편에 서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번번이 정조를 지켜낸다. 그러면서도 연모로 가득한 정조의 고백은 과감하게 마다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의빈 성씨는 정조의 승은을 재차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주로 후사를 보지 못한 중전에 대한 예우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드라마 속 덕임은 “남들이 어찌 생각하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승은을 거절했으며 마침내 승은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연모의 마음으로 내린 자신의 결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러한 선택은 시대와 신분의 한계 안에 놓여 있었기에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으로 연결될 수만은 없었다. 회임하여 후궁의 자리에 오르고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덕임의 얼굴은 무언가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별궁 안에 갇혀 더 이상 무엇도 선택할 수 없으며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을 거두는 순간, 덕임은 정조에게 다음 생에서는 부디 모른 척 스치고 지나가 달라며, 다만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함이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곁에 남기로 했던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노라 고백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결정한 사랑, 그 사랑이 가져온 삶의 여파마저 담담히 수긍하였던 것이다.

정조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 드라마는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훗날 꿈속에서 덕임을 재회한 정조는 그녀를 두고 정사를 보러 갔던 과거의 일을 되돌려 그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왕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운명을 내려놓고 뒤늦게나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할 수 있는 길, 영원으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을 색다른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신분과 시대의 한계에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를 지켜보는 우리 역시 숱한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 스스로 선택하며 행동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나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성덕임의 삶이 남긴 강렬한 여운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종영 이후에도 여전히 그 인기를 이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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