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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십자성호, 천주교만의 유일한 제스처(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신앙단상] 십자성호, 천주교만의 유일한 제스처(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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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발행 [1639호]



세례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어느 신부님께 들은 내용 중 하나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가끔 식당 같은 곳에서 보면 신자들이 십자 성호를 당당하게 긋지 않고 소극적으로 손목 위에 긋거나 작게 바쳐서 간신히 신자임을 드러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천주교 신자임을 당당히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십자성호 또한 당당히 긋겠다고요. 성호! 천주교만의 유일한 제스처를 저는 참으로 좋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할 때의 그 거룩한 느낌!

그런 제 결심을 충실히 지켜왔지만, 얼마 전 잠시 십자성호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있었습니다. 2년 전 일흔 가까운 나이에 주변 젊은이들의 권유로 유튜브라는 가장 첨단 플랫폼에 데뷔하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시작한 유튜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생긴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저의 일상, 특히 아침과 저녁 루틴을 공유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안을 받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아무리 늙은이라도 잠옷 입고 눈뜨자마자 십자성호부터 긋는 나만의 내밀한 순간을 어찌 만천하에 공개하지’하는 염려였습니다. 물론 저녁 루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잠옷 입고 십자고상 앞에서 성호 긋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이니까요. 젊은 제작진들에게 당부했습니다. “혹시 종교 색채가 강하다고 조회수 안 올라가고, 구독자 늘지 않아도 내게 뭐라 하지 마세요. 성호경을 바치지 않는 아침·저녁 루틴은 제게 상상이 안 됩니다.” 제작진들의 대답은 “염려 마세요.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결국, 아침 루틴 조회수가 190만 이상, 저녁 루틴의 조회수는 240만 이상, 좋다는 댓글이 도합 9000개 이상을 기록하고, 냉담을 풀었다는 댓글과 묵주기도를 다시 시작했다는 댓글 등이 달리는 것을 보며 뭔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유튜브를 본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천주교 신자인 제가 생각하는 신앙관을 싣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있습니다.

처음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땐 ‘이 나이에 유튜브 촬영도 버거운데 책을 써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노트북과 씨름하며 매달린 분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제가 이 나이에 호의호식하자고 유튜브 하는 거 아닌 줄 아시잖아요.(유튜브의 제 모든 수익은 보육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책을 쓰는 이유도 제가 제일 가슴 아파하는 보육원의 보호 종료 새내기 청소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도록 인세 전액을 기부하는 게 목적이니까, 제가 끝까지 책을 쓸 수 있게끔 건강과 끈기를 주십시오.’ 그렇게 1년여에 걸쳐 담담히 제 삶의 역사를 쓸 수 있게끔 좋으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수많은 독자가 제 글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졌다는 댓글을 올려주십니다. 댓글을 읽을 때마다 다시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감사의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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