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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에 홀로 사는 중장년들의 쉼터… “당신은 참 소중합니다”

고시촌에 홀로 사는 중장년들의 쉼터… “당신은 참 소중합니다”

서울빈민사목위 ‘참 소중한…’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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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발행 [1639호]
▲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고시촌에 문을 연 ‘참 소중한… ’쉼터. 배가 고프거나 마음이 허기질 때 독거 중장년들은 이곳을 찾아 정서적인 교류를 나눈다. 이영우 신부(맨 오른쪽)와 함께 김치를 담그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중장년들.




▲ 이영우 신부가 동거 중장년들과 함께 깍두기를 만들고 있다.



▲ 서울대교구 대학동 고시촌 담당 이영우 신부는 대학동 원룸에서 지낸다. 이 신부는 “독거 중장년들이 이 쉼터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가 시작됐다. 형제에 대한 무관심을 회개하고 사랑 실천으로 아기 예수 오심을 알려야 할 때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형제들의 외면 속에 고통받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서로에게 대림초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림초에 불을 밝히고 주님을 향한 여정을 떠나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을 지면에 풀어본다.



서울시 관악구에 가면, 2500원짜리 칼국수와 4000원짜리 찌개를 파는 곳이 있다. 보증금 없이 한 달에 15~25만 원의 월세로 생활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중장년들이 값이 싼 주거지와 저렴한 끼니를 찾아 밀려들어 오는 곳. 그래서 한 번 들어오면, 떠나기 쉽지 않은 곳. 45년 역사를 지닌 대학동의 고시촌이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고시원을 가득 메웠던 고시생들의 웃음과 울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40~60대 중장년들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대학동의 건물 2100여 채 중 300채에 가까운 건물에 고시원이 있을 만큼, 서울시에서 고시원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관악구 신림로19길 77. 스타하우스라고 적힌 고시원 1층에 들어서면 마음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부엌을 겸비한 아늑한 카페가 차려져 있다. 부엌 수납장에는 라면이 종류별로 채워져 있고, 냉장고에는 송송 썬 김치와 대파가 마련돼 있다. 눈치 볼 사람도 없이 커피도 언제든 편하게 내려 마실 수 있다. 배가 고프거나 마음이 허기질 때,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울 때 대학동 고시원에 사는 중장년 남성들은 이곳을 찾는다.

“이 고시촌이라는 공간에 이렇게 누구나 와서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쉼터가 생긴 건 고시촌 45년 역사상 처음입니다. 천주교회에 감사할 따름이지요.”(장인국씨)

올해 봄부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장인국(60) 회장은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출입의 문턱이 없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25평 공간의 ‘참 소중한… 센터’는 올해 3월 문을 열었다. 봉천3동 선교본당에서 사목하던 이영우 신부가 이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해주는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대표 박보아)에서 1년간 함께 봉사하면서 이 신부는 고시촌에서 숨어 사는 중장년들이야말로 이 시대에 따뜻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라고 여겼다. 이 신부는 독거 중장년층들의 열악한 환경, 고시촌을 떠날 수 없는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 센터 설립을 건의했다.

관악주거복지상담소와 함께 같은 1층 건물을 쓰고 있는 ‘참 소중한… ’ 쉼터는 독거 중장년들이 함께 모여서 쉬고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 골목에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는 해피인과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소가 모여 있어, 독거 중년층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아지트가 됐다. 시민단체 모임을 비롯해 자조모임 공간으로도 쓰인다.

사단법인 관악사회복지 박승한 이사장은 “이 동네는 서울에서 고시원 임대료가 가장 싸고 지하철 2호선 라인이어서 교통도 편하고 물가가 싸서 1인 가구 중년층이 많이 들어온다”면서 “이곳을 나가려면 잘 돼야 나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시원에는 개인 화장실도 없는 데다가,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돼 외롭다”면서 “1인 가구 중년 남성을 위한 특화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중년들이 모여드는 곳, 이곳의 주거급여 수급자 중에는 40~60대 중장년의 비율이 높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대학동 고시원ㆍ원룸에 사는 세입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월평균 소득은 93만 66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저소득층이었다.

센터를 이용하는 한흥주(43)씨는 “쉼터가 없으면 공원 같은 곳을 돌아다녀야 하고, 추운 데 있어야 하는데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고, 커피도 마음대로 내려 마시고, 라면 한 끼도 끓여 먹을 수 있어 마음의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한씨는 최근 복지센터에 취직해 첫 월급으로 센터 가족들에게 통닭을 대접했다.



서울 대학동 고시촌 담당 이영우 신부 인터뷰

"센터에 들어온 순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느끼면 좋겠어요"







“계획 없어요. 같이 노는 거죠. 이분들은 당장 일자리가 생겨서 나가는 게 중요하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대화도 나누고, 탁구도 하고, 마을도 가꾸면서 하루라도 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이죠.”
 

이영우 신부<사진>를 만나러 대학동으로 간 날, 이 신부는 앞치마를 메고 중년 남성들과 깍두기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영우 신부는 올해 2월 고시촌 담당으로 인사발령을 받고, 대학동에 원룸을 얻었다. 주변에서는 사제관에서 지낼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참 소중한…’ 쉼터를 운영하면서 독거 중년 남성들 속에서 함께 살고 싶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잊고 삽니다. 자신을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가족들을 미워하게 되죠. 그러면서 하느님까지 원망하게 되는….”
 

이 신부는 “고시원에서 사는 이 사람들은 여름에는 냉방이 안 되고,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는 작은 방 한 칸에서 갈 곳도 별로 없고, 쉴 곳도 없이 살고 있다”면서 “센터에 들어온 순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를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쉴 수 있는 권리는 매우 소중합니다. 매일 먹는 라면이라도 자연스럽게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대파와 치즈를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어요?(웃음)”
 

이 신부의 사무실 한쪽에는 기증받은 남성 겨울옷과 운동화가 놓여있었다. 그는 “대학동은 고독사와 자살률이 높다”면서 “최근 어느 한 분이 들어와 냉장고에 있는 빵을 잔뜩 꺼내 먹길래 말을 걸었더니, ‘이틀을 굶었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 신부는 가장 쉽게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가장 먼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대신 화단을 만들어 꾸미고, 같이 산책도 하고, 함께 영화도 봤다. 센터 운영을 미사와 전례 중심으로 하다 보면, 봉사자와 신앙을 가진 독거 중장년들이 중심으로 들어오고, 신앙이 없는 이들이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 염려됐다. 그래서 미사는 매달 마지막 주일에만 봉헌한다.
 

후원계좌 : 1005-104-121020 (우리은행) , 예금주 :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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