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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비생산의 역사적 반복, 바꿀 수 없을까?(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시사진단] 비생산의 역사적 반복, 바꿀 수 없을까?(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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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발행 [1639호]



막내가 재수했다. 두 번째 수능을 치르고 기진맥진한 아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는 것 말고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지난해에는 일명 코로나 고3이었다. 학교를 수업일수의 1/3도 안 갔던 것 같다. 학원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강사, 수강생 등 나오고 있었지만, 학교보다 많이 갈 수 있었기에 학습격차 문제가 제기됐었다.

그런데 입시는 수능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작이다. 대학별 전형이 진행되고 있다. 수시ㆍ논술ㆍ학종(학생부종합전형)ㆍ입학사정관제 등 전문가가 아니면 다 알 수 없는 복잡한 현행 입시제도. 그 판 위에서 말들이 되어야 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두 해 연속하다 보니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침 9시에 아이 논술이 있다. 8시 반 입실인데 온도도 재고, 방역해야 하니 일찍 서둘러 달란다. 그래, 8시까지 가자. 새벽에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승용차로 30분 거리. 여유 있게 7시에 나왔지만, 여유 있는 게 아니었다. 고사장인 대학까지 아직 5㎞쯤 남았는데 이미 도로는 주차장이다. 멈춰선 차 안에서 10분, 30분이 흐르고, 느리게 굴러가는 차가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남은 시간은 빠듯해진다. 그리고 결국 차들의 문이 일제히 열리고, 학생들은 경주로에 풀어진 경주마처럼 내달리기 시작한다.

중고차를 구매해서 다니고 있는 지금 차량은 약 8만㎞ 가까이 달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차를 바꾸는 기준은 10년 이상 타고, 20만㎞쯤 달렸을 때 바꾸는 것이다. 1996년 첫차 이래 대체로 지켜왔다. 이 차를 아직 더 타야 하지만 다음에 바꾼다면 전기차가 되겠지. 지금은 휘발유 차량이다. 그런데 최근 느닷없는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다. 생각지 않았던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터졌고, 원인을 따라가면 미·중 갈등에서 비롯됐지만, 그 피해는 엉뚱하게 죄 없는 국내 디젤 차량 운전자들이 겪고 있다. 정부의 책임론도 나오고 허둥지둥 마련한 요소수가 마치 전쟁통에 배급되는 물자처럼 길게 늘어선 줄에 제한적으로 판매 되는 것을 뉴스로 본다.

무언가를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한다는 것. 예전에는 종종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비참함이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 초와 말, 두 번의 ‘오일쇼크(석유파동)’가 있었을 때다. 한겨울, 석유라는 연료를 얻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네 주유소에 가서 줄 섰다. 양손에는 20ℓ들이 플라스틱 석유통을 들고. 1973년 초등학교 1학년 때와 79년 중학교 1학년 때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던 겨울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1984년 12월 겨울. 학력고사를 치르고 집에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 다음 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대학에 가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12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하루에 다 평가해서 등급을 나눌 수가 있어? 그런데 올해 수능을 치고 나온 아이가 말했다. 아빠, 수능은 곧 없어지겠지? 어쩌면 내 아이도 내가 수험생 때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조금만 뜻과 힘을 모으면 훨씬 좋게 바꿀 수 있는 일들을 통과의례라는 미명으로 답습하고 반복하고 있는 사회적 비생산을 꾸역꾸역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험 마치고 나올 아이를 주차장에 댄 차 안에서 기다리는데 운동장을 꽉 채운 차 안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아빠, 엄마, 학부모들이 앉아 있다. 이 무슨 전쟁 같은 비생산이람. 라디오에서는 피아졸라의 느리지만, 긴장감 팽팽한 탱고 연주, ‘오블리비언(망각)’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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