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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복음화 위해 신앙 기초 다지고, 생명수호 활동 펼쳐

새 복음화 위해 신앙 기초 다지고, 생명수호 활동 펼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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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발행 [1638호]
▲ 2014년 2월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모자와 반지를 받아 착용한 염수정 추기경이 교황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수환(1922∼2009)ㆍ정진석(1931∼2021) 추기경에 이은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9년 5개월간 서울대교구장으로 헌신해왔다. 1970년 사제품을 받은 후 반세기 넘게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쳐온 염 추기경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추기경의 사목표어는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이다.



▲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이 당시 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과 손을 맞잡고 기뻐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신앙 튼튼히 하고,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2012년 6월 25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에 착좌한 염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끊임없는 내적 쇄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선교 노력은 우리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2013년 신앙의 해를 시작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 위기를 ‘허약한 신앙’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부터 5년간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기 위한 세부적인 사목지침(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ㆍ기도로 자라나는 신앙ㆍ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ㆍ미사로 하나되는 신앙ㆍ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고,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할 것을 당부했다.

2014년 2월 22일, 한국 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염 추기경은 그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라는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 124위 시복식은 한국 교회가 자력으로 추진해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청원서’를 공식 접수한 후 5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순교자 정신을 함양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염 추기경은 2019년 6월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조성한 것을 가장 보람된 일로 꼽는다.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과 청소차 주차장으로 사용돼 도심 속 고립된 섬 같았던 공간은 죽음의 형장이 아닌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위로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서울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해 8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정부의 공식 처형지로, 단일 순교지 중 가장 많은 성인(44위)과 복자(27위)를 배출한 곳이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순교자들이 그것을 마련해 주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곳을 찾는 세계의 시민들이 영적인 기쁨과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020년 11월 14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을 찾은 쪽방촌 주민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건네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염수정 추기경이 2015년 11월 19일 여의도성모병원 산모-신생아 집중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미혼모에게 용기 주고, 노숙인에게는 밥상을

염 추기경이 재임 시절, 가장 역점을 둔 사목은 생명이었다. 2005년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설립한 때부터 초대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생명수호 활동을 펼쳤다. 교구장에 착좌하면서도 생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을 만큼, 생명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염 추기경은 “인간 생명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을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바라보고, 결국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염 추기경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인 태아를 그 어머니에 의해 죽여도 좋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여성들이 낙태를 고민하지 않도록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명윤리학자 이동익 신부의 제안으로, 2020년 생명위원회에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설립했다. 1년에 두 번씩 비공식적으로 미혼부모를 만나 후원금을 전달해왔다.

아울러 그는 올해 1월, 명동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 노숙인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을 마련했다. 또 서울대교구 주교들과 틈틈이 용산구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 방문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사랑의 도시락도 배달했다.

한편, 그가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한국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었고, 2017년에는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2019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생명경시 풍조는 더 깊어졌다. 2020년 2월 말, 한국 교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상 초유의 ‘미사 중단’이라는 조치를 내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동참해야 했다. 코로나19는 교회의 많은 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했으며, 만남과 친교를 바탕으로 한 신자들의 신앙과 성사 생활은 제약을 받았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사랑의 기쁨」 등의 문헌을 발표했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서한은, 생태적 회개의 삶과 창조질서보전을 촉구하는 서한(‘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관하여’)이다.



▲ 1983년 염수정 추기경 부친 염한진옹 삼우재를 마치고 찍은 가족사진. 왼쪽 두 번째가 염 추기경. 맨 왼쪽은 동생 염수완 신부, 맨 오른쪽은 막내 동생 염수의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DB



옹기를 구워 팔았던 집안의 후손

염수정 추기경은 194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 1908~1983)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1908~1995) 사이에서 5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염 추기경 집안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교회 초기, 신앙을 받아들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 1768~1827)공 때부터였다.

그의 집안은 4대조인 염석태(베드로, 1794 ~1850)공이 충북 진천에서 옹기를 구워 팔면서 박해 시절을 견뎌냈다. 염 추기경의 어머니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염 추기경은 염씨 일가에서 첫 번째로 사제가 됐으며, 두 동생(염수완ㆍ염수의)도 사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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