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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강력 반대’

한국 교회,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강력 반대’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중증 장애인과 가족 현실 고려하지 않은 점 지적… 장애인 특성에 맞는 지원 방안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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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 발행 [1633호]
▲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유경촌 주교가 주교회의와 전국 교구, 남녀 수도회 연합체 사회복지 기구 대표들과 함께 정부 ‘탈시설 로드맵’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해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유경촌 주교)는 6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설 이용이 절실한 상황에 있는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과 연대해 심각한 우려와 강력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탈시설은 장애인들이 거주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 안착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과정이다. 정부 ‘탈시설 로드맵’은 2022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ㆍ인프라 구축 등 탈시설ㆍ자립지원을 위한 기반 여건을 조성한 뒤, 2025년부터 탈시설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2만 4000명에 이르는 시설 거주 장애인을 매년 740명씩 지역사회로 내보내 2041년까지 약 2200명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로드맵은 그 방안으로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설치 금지’와 가평 꽃동네를 비롯한 ‘대규모 거주시설(200인 이상 2곳ㆍ100인 이상 23곳)의 기능 전환’ 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가 공인한 국내 장애인 복지기관은 345곳(전체 복지기관의 27%)으로, 이 가운데 절반(175곳)이 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탈시설 로드맵은 집중적인 돌봄과 보호가 필요함에도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지원 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어려움에 놓여 있는 중증발달장애인ㆍ최중증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지역사회 지원 체계 부족 등의 심각한 현실을 무시하고, 돌봄과 보호의 책임을 결과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전가한다는 이유에서다.

사회복지위는 “전국 장애인 거주 시설의 80%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전체 발달장애인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발달장애인 중에 시설 입소 대기자가 무척 많다”며 “하지만 정부가 신규 시설 설치를 지원하지 않고, 예산도 책정하지 않아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봐줄 시설을 찾지 못해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와 자녀 돌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가정의 아픔에 대해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눈앞에 있는 불도 끄지 못하면서 발달장애인의 10%가 머무는 시설을 없애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를 비롯한 가족,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새로운 방향의 ‘탈시설 로드맵’을 구축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정부는 장애인의 장애 특성과 생애주기 등에 따른 선택권 보장과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수립하라”고 요청했다. 사회복지위는 “유럽 선진국에선 장애인 본인과 부모ㆍ가족이 장애 특성과 건강 지수에 따라 그룹홈과 마을 단위 공동체ㆍ30인 공동생활 시설ㆍ장애인 요양 센터 등 가장 적합한 생활 형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장애인 자녀 통제 불능이나 건강 악화ㆍ사망으로 장애인 거주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가족에게 이런 선택의 권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탈시설 로드맵은 이러한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없애고 오로지 온전한 자립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탈시설 로드맵은 장애인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회복지위는 또 지역 내 특수학교ㆍ주간보호시설 설치 등에 대해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님비현상’을 언급하며, “정부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나 구체적 대응 방안 없이 상시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과 가족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 장애인들이 우리 국민으로서 비장애인과 더불어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정부는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현실적 방안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특별히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이 천명하고 있는 인간 존엄성의 정신과 가치를 올바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실천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입장문에는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유경촌 주교와 총무 김봉술 신부, 군종교구를 제외한 15개 교구와 남녀 수도회 연합체 사회복지 기구 대표들이 이름을 올렸다. 유 주교는 이날 “가톨릭교회가 탈시설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한 사람을 온전히 존중하는 의미의 탈시설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들 의견은 듣지 않고 만든 엉성하고 획일적인 탈시설 로드맵을 정부가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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