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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9주일 -고통과 시련이 섭리가 되기 위해선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9주일 -고통과 시련이 섭리가 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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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 발행 [1633호]
▲ 함승수 신부



미국의 애리조나 주에는 억만장자들이 은퇴 후에 모여 사는 ‘썬 밸리’(Sun Valley)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호화로운 곳에 사니 당연히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다른 곳보다 치매 발병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 삶의 흔한 세 가지 요소, 즉 ‘스트레스’, ‘걱정’, ‘변화’가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치매 발병률이 높은 이유였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병을 이겨낼 힘이 길러지는데 그런 것들이 없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져 더 쉽게 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근래에는 원래 살던 마을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에서 갇혀 사는 것보다 어려움을 겪는 것이 더 건강해지는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픔 없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도 없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이신 예수께서 겪으셔야 할 고통과 시련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착잡하고 심란한 마음과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통해 얻고자 하는 영광만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길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주님께 청합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이루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작은 십자가부터 감당하기 버거운 큰 십자가까지 다양하지요. 그렇기에 주님께 무엇인가를 청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주님께 청하는 그것이 스스로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진정으로 바라고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버리고 희생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두 제자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원하는 것을 성급하게 얻으려고만 했기에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 따르는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큰 영광과 성공을 청하기 전에, 과정에 따르는 고통과 시련, 어려움을 견뎌내고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각오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와 각오도 없이, 주님을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얄팍한 청은 이루어주실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깊이 일치하려는 열망,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고통의 잔을 기꺼이 마시고, 시련의 세례를 기꺼이 받는다면 우리에게 영광과 행복의 자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자리’의 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하늘 자리’도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에게만 돌아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좋은 자리를 달라고 한 것도 그런 조바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자리가 다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이고, 왼쪽 자리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귀한 사람’이 됩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을 잘 따를 수 있을지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그저 ‘벌’처럼 느껴지지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이에게는 고통과 시련마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뜻’이 되고 ‘섭리’가 됩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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