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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손님은 줄었지만 묵주기도 드리며 이웃과 온기 나눠

양말 손님은 줄었지만 묵주기도 드리며 이웃과 온기 나눠

[숨, 쉼, 공간] (4)양말 노점상 주행숙(아녜스)씨의 일터 ‘명동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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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0 발행 [1632호]



제 일터는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을 감싸고 있는 명동거리입니다. 명동거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었지요. 코로나19가 덮친 후, 중국인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고 거리는 한산해졌습니다. 매일 낮 12시, 저녁 6시가 되면 명동대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이곳 명동거리로 내려와 은은하게 퍼집니다.

명동거리에서 10년 넘게 양말을 팔았네요. 잉어빵을 팔았던 시간까지 포함하니 20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잉어빵을 팔 때는 반죽을 계속 올리고, 빵을 앞뒤로 뒤집어야 해 어깨와 팔이 많이 아팠는데, 양말은 그나마 편합니다. 300만 원 들여 장만한 손수레에 각양각색의 양말을 올려다 놓거나, 걸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겨울에는 그나마 양말들을 많이 찾는데, 요즘 여름에는 사람들이 덧신도 신지 않아 하루에 한 켤레도 못 팔고 갈 때도 잦습니다.

장사가 안될 때도 많지만, 사람들에게 인색하면 안 되지요. 매일 명동거리로 출근할 때 명동의 택시 기사님들을 위해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옵니다. 바로 앞에 호텔이 있는데, 그 앞에서 대기하는 택시 기사님들에게 제가 준비한 따뜻한 물에 커피 한잔 타드시게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내 넉넉해집니다. 물을 담아 놓는 보온병은 바로 옆 갈빗집에서 홀서빙 일을 하던 조선족 아저씨가 선물로 주신 거랍니다. 조선족 아저씨의 부인에게 양말 몇 켤레를 선물로 드렸거든요. 근데 갈빗집은 장사가 안돼서 지금 문을 닫았어요.

이 명동거리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공간에 불과하지만,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일터입니다. 이 거리의 건물에서 일하는 건물 관리인들, 식당 종업원들 모두 서로 인사하고 지낸답니다. 작은 거라도 들어오면 같이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거리의 천사들입니다. 건물 청소하는 분들이 박카스도 갖다 주시고, 명동성당에 오가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항상 먹을 것을 건네시지요. 요 앞에 건물 청소하는 분들이 교대로 일하시는데 제가 손수레에 봉을 꽂고 뺄 때마다 오셔서 매일 같이 도와주십니다. 세상에는 참 따뜻한 사람이 많아요. 저는 ‘항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살아요.

명동거리의 소음은 익숙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 마지막 길도 배웅해드렸고, 얼마 전 정진석 추기경님 가시는 길에도 인사를 드렸지요. 10여 년 전, 세례받기 전만 해도 양말 살 때 깐깐하게 굴고, 양말을 다 뒤집어 보면서 꼬투리 잡는 손님들에게 화내고 일일이 대꾸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대꾸하지 않으니 편안하고, 좋게 생각하려고 하니 마음이 점점 좋아집니다.

양말은 많이 안 팔립니다. 진짜 많이 팔면 하루에 10만 원어치, 한 켤레도 못 팔고 갈 때가 왕왕 있지요. 그렇지만 저도 기부란 것을 하고 싶어서 해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양말 1000켤레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양말과 성인 양말을 섞어서 보내지요. 세례를 받으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고 살아야겠다’는 것이 하느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제가 보낸 양말로 가난한 아이들의 발이 따뜻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10년 전에는 구청에서 단속이 나와 손수레를 끌고 왔다 갔다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명동성당 허가를 받아서, 성당 앞에서 장사하니 손수레를 끌고 이동할 필요가 없어요. 명동성당에 다니는 대모님이 성당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지요.

덕분에 저는 이곳에 온종일 앉아 기도합니다. 오전에는 묵주기도를 바치고, 오후에는 매일미사 책을 읽습니다. 이제는 매달 매일미사 책이 나오면, 책방 아가씨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저에게 직접 책을 배달해줍니다. 의자에 앉아 묵주 알을 굴리고 있는 제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명동대성당 옆 교구청에 사시는 염수정 추기경님과 손희송 주교님도 먼저 인사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 년간 선물로 양말을 올려드렸는데, 해마다 명절이 되면 한우 갈비에 홍삼, 한과에 귀한 선물을 보내주십니다.

온종일 100단 넘게 묵주 기도를 하면서 제 마음은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고 보니, 10월! 묵주 기도 성월이네요.

글=이지혜 기자·사진=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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