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평등사회 서막 열고, 인간 존엄성 위해 맞서는 ‘순교의 자리’ 알리다

평등사회 서막 열고, 인간 존엄성 위해 맞서는 ‘순교의 자리’ 알리다

[특별기고]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헌이 전해준 뜻 / 조광 교수

Home > 기획특집 > 일반기사
2021.10.10 발행 [1632호]
▲ 전주 초남이성지에서 9월 16일 거행된 유해 안치식과 축복 미사가 끝난 후 신자들이 안치소에서 순교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가 유해성광에 분향하고 있다.



여러모로 교회가 힘든 시기에 첫 순교자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윤지헌의 묘소가 최종 확인되었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교회가 보여준 역사고고학적 작업에서 이제 우리 교회도 역사고고학계의 연구 방법을 존중한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역사고고학자와 의학자들이 참여하여 유해에 가해진 칼자국과 토양 분석, 유전자 검사에 이르는 엄밀한 고증이 병행되었다. 이는 이전에 윤지충과 권상연의 후손들로부터 유전자를 미리 얻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교자들의 유해가 확인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번의 발굴도 각종 문헌 기록을 연구하며 무수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찾으려던 후손의 노력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생각된다. 때로는 간첩이나 도굴꾼으로 신고되어 곤욕을 치르면서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밝히기를 40여 년 동안 그치지 않았던 한 사제의 묵묵한 발걸음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협동 작업을 본다. 이번의 발굴을 통해 나는 1995년 바우배기 발굴을 시도했다가 좌절되고서 심한 가슴앓이에도 묵묵히 침묵했던 한 사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전주교구 원로사목자 김진소 신부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묘소가 확인된 일은 신앙인의 견지에서 볼 때 놀라운 선물과 은총이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천주교의 특수 용어나 감성에 국한하거나, 순교의 의미를 교회라는 폐쇄된 공간에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들의 죽음을 단지 유교 사회에서 조상제사를 거부한 죄목에만 연결해 이해해서도 안 된다. 조상제사 거부는 이들이 삶으로 고백했던 신앙의 일부였다. 이들을 향한 조선 정부의 형 집행은 궁극적으로 천주교 공동체가 드러내는 새로운 사회와 희망을 겨냥했다. 이 때문에 2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그들의 유해는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장면을 밝혀주는 조명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순교한 이들이 믿고 실천했던 의리의 새로운 기준인 사랑, 양심, 평등 그리고 믿음의 자유 등에서 우리 사회가 현재에 누리는 평화와 정의, 민주의 가치의 뿌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순교자들은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기준을 터득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일반인들은 ‘국왕의 명령을 하늘의 명령으로’ 여겼다. 당시는 모든 옳고 그름과 가치 판단의 기준이 왕명(王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주교 신앙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그들은 천주교 신앙을 통해서 당시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던 국왕의 권위를 상대화시켰다. 그리고 ‘모든 의리의 원천은 천주에 대한 사랑에 있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이유로 윤지충과 권상연은 국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교자가 되었다. 이렇게 그들이 주장하고 실천했던 바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윤지충 등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자녀인 인간은 서로 평등한 존재라는 믿음에 공감했다. 그들은 신앙을 통해 성리학적 사회 신분관을 극복하고 인간관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반의 체면을 거부하고 무지렁이 농투성이, 거사패(사당패), 백정들과 함께 어울려 새로운 믿음살이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는 자신의 신분적 특권을 포기하고 인간에 대한 큰 사랑을 실천하던 행위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평등을 주창하며 일종의 사회혁명을 시도하는 사람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역사는 여기에서 새로운 평등사회를 추구하고 실천했던 윤지충과 권상연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추출해 내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양심의 존재를 발견하고 여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개인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자유로운 인간 존재에 대한 어스름한 인식을 드러내 주었다. 양반이었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양반이면 가져야 할 집단의식을 거부하고 양심에 근거하여 개인의 생각을 내세웠던 일은 억압된 전근대를 극복하고 새 사회의 서막을 여는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비록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사회를 여는 마중물이 되어 보이지 않은 변혁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보면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은 광신이나 맹신의 결과가 아닌 건전한 이성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실천했고 역사 발전의 마중물이 되었다. 우리는 이들의 주검에서 순교라는 단어를 찾더라도 그들의 도타운 신앙심과 함께 이러한 역사 발전의 증좌를 함께 확인해 가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순교는 우리나라 역사의 공동자산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윤지충 등이 순교한 1791년의 박해에 대한 본격적이고 철저한 연구가 우선 요청된다. 그들의 영성과 함께, 그들이 바우배기에 묻히게 된 까닭을 밝혀내는 작업도 진행되기를 희구한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당시 천주교 신앙이 가지고 있던 가치를 비교해 본다면, 새롭게 형성된 그 공동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복음의 문화화를 향한 참 의미가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죽음만을 강조하며 순교를 바라볼 때 종교 자유가 보장된 오늘의 순교자 현양은 방향을 잃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열망 안에서 선교사의 도움 없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진리로 고백했던 우리의 교회사는 새로 쓰인 사도행전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했던 그들의 모범은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모든 힘듦에 맞서는 자리가 바로 순교의 자리임을 우리에게 역설한다. 우리에게 그들이 묻는다. “진정한 형제애는 무엇인지”, “정녕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무엇을 희망하며 이 고난을 겪어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이 물음에 대해 “예, 저는 천주교인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삶으로 증거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다섯 번째의 복음서를 쓰게 된다. 필자는 “무명 순교자를 따르리라”는 고백으로 평생을 바친 늙은 사제를 기억한다. 김진소 신부는 피와 땀을 흘렸고 오늘도 흘리고 있는 순교자들과, 손수 지은 선교사 기념관을 보듬으며, 교회를 위한 선교사들의 희생을 기리려 한다. 그의 침묵하는 손길은 우리 모두가 순교자의 자랑스러운 후예임을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조광 이냐시오(고려대 명예교수,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