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슬기로운’ 상상력

[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슬기로운’ 상상력

백소연 레지나(가톨릭대 조교수)

Home > 여론사람들 > 평화칼럼
2021.09.05 발행 [1628호]


전 시즌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졌다고도 하지만,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2’는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이다. 율제병원에서 일하는 99학번 동기 의사 다섯 명과 그들이 담당한 환자, 보호자들의 각기 다른 사연은 매회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거듭 다루었던 장기 이식의 문제 때문인지 실제로 최근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단순히 재미를 넘어, TV드라마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 2’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에도 겉으로 드러난 질병만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다친 마음마저 보듬으려 한 극 중 의료진들의 진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획의도의 말처럼 “따스함이 눈물겨워진 시대”에 “마음 한켠을 묵직하게 채워” 주는 공감은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드라마 속에는 투병 끝에 아이가 사망했는데도 여전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주 병원을 찾아오는 아이의 엄마가 등장한다. 언뜻 보면 이런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워 무슨 저의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그 보호자는 단지 자신의 아이 연우가 살아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 짧은 생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어떤 진료도 할 수 없지만 외과 레지던트인 장겨울은 아이를 잃은 연우 엄마의 슬픔을 헤아리고는 그 고통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SNS 계정을 열어 가족이 없는 전신마비 환자의 병상을 지킬 사람들을 모으고,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아기를 잃게 된 환자에게 위로의 편지를 전하는 에피소드들 역시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속 의사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종합병원을 다녀봤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경험했을 것이다. 넘치는 대기 환자들과 몇 분 남짓의 빠듯한 진료시간 안에서 의료진과 특별한 교감을 나누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명쾌하게 이루어졌다 해도 그 과정에서 겪는 외로움과 불안은 대개 환자와 보호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대형병원의 영리화나 지역의료망 붕괴, 취약한 공공의료 상황이 야기한 구체적 문제들 또한 우리에게 엄존한 현실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의료진과 현장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의료계의 이러한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전 시즌에 비해 거세진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녹록지 않은 팬데믹의 상황과 달리 텔레비전 화면 속 율제병원에는 선의로 가득 찬 사람들의 아름다운 평화만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사회 경제적 신분의 벽마저 넘어서는 사랑, 악인이 징치되며 선인이 보상받는 사회, 정의와 공정, 인간 존중의 가치가 도도히 흐르는 세계는 항상 드라마가 지향해 왔던 이상향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이상이 발 딛은 현실과 온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드라마가 가진 설득력과 감동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1’에서 받았던 시청자들의 사랑에 힘입어 이후의 시즌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화면 밖 진짜 세계를 직면할 용기일 것이다.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 그것을 더욱 섬세히 그려낼 ‘슬기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