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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월 평화칼럼] 언론의 자유는 더 누려야 한다

[김승월 평화칼럼] 언론의 자유는 더 누려야 한다

김승월 프란치스코(시그니스서울/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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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발행 [1608호]


요즘 일부 유튜브나 신문의 정치광고들이 지나쳐 보일 때가 있다.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험하게 하거나, 탄핵이란 말도 쉽게 꺼낸다. 대놓고 그리 해대니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를 실감한다. 전두환 관련 기사가 검정 칠로 가려진 미국 시사주간지를 받아 본 80년대 초 기억이 남아있다. 라디오 PD를 했을 때는 아침 시사프로 ‘홈런출발’ 진행자가 “북한에 교회가 있다”고 한마디 했다가, 제작국 전체가 얼어붙는 것도 보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기획단계부터 움츠렸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폈으니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왜 이리 드문가.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질문자는 기삿거리가 되어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조리돌림 당했다. 그런 분위기라면 기자회견을 한들 그 누가 마음 편히 할 말을 할까. 언론의 자유를 누릴 만큼 누린다고 믿는 분께 권하고 싶다. 집권층에 불편한 사건이 터졌을 때 인터넷 뉴스를 샅샅이 검색해 보시라고. 특정 매체는 그런 사건을 아예 빼버리기도 한다. 일부 포털의 뉴스 배열에서는 국민적 관심사가 선정적 뉴스에 묻히거나 사소하게 다루어진다. 포털 다음의 뉴스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보낸 어느 국회의원의 문자가 떠오른다. “너무 하는군. 들어오라고 하세요.”

언론의 비판을 부당하게 여기기 쉽다. 특정 정치세력과 연관 지어 의도를 의심하거나, 비판을 통해 주목받아 구독자를 늘린다고 탓하기도 한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부추긴다고 분노할 수도 있다.

언론의 기능 중 하나는 권력층의 잘잘못을 밝혀내어 사회를 투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회가 투명해지면, 자연스럽게 공정과 정의가 자리 잡는다. 언론이 정권의 아픈 부위를 파헤쳐 정권을 뒤흔들기도 하지만, 이는 예방주사나 수술과 같다. 소금은 짜야 소금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아 더 큰 사고를 막아내고 정권을 강화할 수도 있다. 길게 보면 국민은 물론 집권층에도 좋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만들고 있다. 사이비언론매체나 가짜뉴스를 몰아내고 억울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1인 미디어는 제재받는 게 당연하다. 일반 전통 미디어에 같은 제도를 적용하면 모든 언론인이 위축될까 염려된다. 언론 상호 간의 건강한 비판과 시청자나 독자의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 아닐까. 언론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권력의 개입을 자제해야 자유민주사회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말로 언론의 자유를 강조했다. 정치인들의 언론관이 걱정스러운 우리 상황에서, 징벌적 배상제도를 순수하게 운용할지 의문이다. 징벌 기준을 판단하는 외줄 위에서 서투른 칼춤을 출까 염려도 된다. 언론을 길들이고 주눅 들여선, 애완견밖에 못 만든다. 도적이 들어와도 집을 지켜주거나 주인을 보호하기는커녕 꼬리 내리고 주인 뒤에 숨을 것이다. 언론을 막는 일은 자기 귀를 틀어막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만 못 듣고 남은 다 듣는다.

이런 글을 마음 편히 쓰는 이만큼의 자유도 소중하고 고맙지만, 더 욕심이 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만의 자유가 아니다. 미디어를 듣고 보고 판단하는 온 국민의 자유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주는 힘이다. 언론의 자유는 누릴 만큼 누려야 마땅하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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