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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언니들과 닭 50마리가 펼치는 생명의 날갯짓 ‘푸다닥’

시골언니들과 닭 50마리가 펼치는 생명의 날갯짓 ‘푸다닥’

예수성심시녀회 ‘진동 요셉의 집’ 닭 키우는 수녀들의 부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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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발행 [1607호]


“처음에는 닭을 만지는 것도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닭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실례합니다’ 하면서 갓 낳은 알을 꺼내왔는데, 이제는 닭 엉덩이를 번쩍 들어서 알을 꺼내와요. 닭들이 머리와 등에도 올라타요. 안아주면 가만히 안겨있어요. 옷도 좋은 거 입을 필요 없어요. 시골 촌아줌마처럼 살거든요. 관구장할 때는 행정 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닭들이랑 같이 사니 힐링이 되고 재미있어요. 하하.”(최명순 필립 네리 수녀)





가난과 불편함 선택, 창조질서 회복 꿈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광암1길. 광암해수욕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너른 언덕배기에 ‘촌아줌마’ 8명이 산다.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한 후 일바지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는다. 닭장과 밭으로 흩어진다. 손에는 삽과 곡괭이, 닭 모이가 들렸다. 봄의 땅이 피워올린 민들레와 냉이, 쑥, 머위, 원추리 등 봄나물의 향이 바람결에 뒤섞인다. 봄나물을 캐며 허리를 펴 하늘을 보는 사이, 고즈넉한 저수지에는 청둥오리들과 올챙이들이 노닌다. 닭장에는 닭 50마리의 홰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강아지 ‘진동이’가 닭장을 지키고 있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이들은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들이다. 이곳 ‘진동 요셉의 집’(원장 김현옥 수녀)은 알코올 중독자 시설이었지만 2019년 1월부터 생태공동체로 탈바꿈했다. ‘땅과의 접촉을 유지하라’는 예수성심시녀회 설립자 남대영(루이 데랑드) 신부의 정신을 살리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함으로써 생태계 복원과 기후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생태공동체의 모토는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다. 삶의 방식으로 가난과 불편함을 택했다. 8명의 수녀는 작지만 소박하게 땅을 살리기 위한 농사를 짓고, 친환경적으로 닭을 키우면서 하느님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고 창조질서의 회복을 꿈꾼다. 수녀들은 농부로만 살지 않기 위해 매주 금요일에는 인문학 공부도 하고 있다. 신자들을 위한 피정 공간도 마련돼 있다.




▲ 40년 동안 본당 소임을 해온 유은준 수녀가 밭일을 하고 있다.

▲ 진동 요셉의 집 전경. 광암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서 수녀들은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통해 창조질서를 회복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산다.





닭 키우고 유기농법 농사 짓고

이곳에는 2년간 성가소비녀회에서 JPIC(정의ㆍ평화ㆍ창조보전) 학교를 마친 김현옥(헤르만) 수녀가 제일 먼저 들어와 닭장부터 짓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130마리까지 닭을 키웠는데 족제비들이 닭을 잡아먹는 바람에 고생을 정말 많이 했죠. 족제비들이 못 들어가게 철통 보완 장치를 해놨는데, 이제는 쥐들이 땅을 파고 들어가 닭 모이를 먹고, 병아리들을 잡아먹는 거예요. 족제비들이 쥐가 파놓은 굴로 따라 들어가 닭들을 잡아먹고요. 전쟁이었어요.”

지금은 청계 50마리가 닭장을 지키고 있다. 닭 모이 역시 쌀겨와 깻묵, 멸치, 보리쌀, 패화석 등 친환경 모이를 사용하며 자연방사로 키우고 있다. 하루 달걀 생산량은 아직 30알이 안 된다.

김 수녀는 처음 생태공동체를 꾸리며 토종 씨앗을 얻어오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며 6개월간 아팠다. 배추, 고추, 마늘, 양파 등 농사를 지으며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땅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파쇄한 나무와 낙엽들을 밭에 깔아 놓았더니 수천 마리의 땅거미들이 벌레들을 다 잡아먹어 깨끗한 배추를 생산해냈다. 진딧물은 은행 삶은 물과 식초를 섞어 분무기로 뿌려줬다. 그렇게 생산한 유기농 배추는 지인과 친구, 신자들에게 보급했다. 다만, 탄소 제로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택배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갖다 주거나 가지러 오게 한다. 수녀들이 키운 농산물들을 밭에서 뽑아다 팔아와 돈을 갖다 주는 신자들도 있다. 수녀들은 콩나물과 두부, 생선 외에는 장을 보지 않고 제철 밭에서 나오는 것들로 먹거리를 해결한다. 대소변을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태화장실도 설치했다.



자연이 주는 치유력과 기쁨


40대부터 80대까지 함께 가족처럼 어우러져 지내는 수녀들은 자연이 주는 치유력을 느낀다. 40년 넘게 유치원에서 원장으로 살아온 수녀, 몇십 년 동안 본당 소임만 해온 수녀, 로마에서 유학하고 온 수녀도 있다.ㅈ

정하순(다니엘) 수녀는 “노동에서 오는 기쁨과 함께 땀을 흘리고 흙을 만지며 땅을 살리는 의미 있는 소임을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겨우내 죽어있는 줄 알았던 흙과 나무에서 움터나오는 새싹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땅과 물, 생명을 살리는 농사를 지으면서 인간도 공동체 안에서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서로 도와주고 연결돼 있음을 느낍니다. 모든 것 안에서 생명을 키워나간다는 것, 생태공동체 자체가 부활을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산파 역할을 하는 우현정(비아) 수녀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나와 본능적으로 물을 먹고 하늘을 보고, 부리로 깃털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고 말했다. 우 수녀는 닭이 낳은 알을 부화기에 옮겨 21일이 되면 병아리를 육추기에 옮겨 키우는 역할을 한다.

원장 김현옥 수녀는 “땅도 몸이랑 같다”면서 “비료와 농약을 치니까 미생물이 죽어버리고, 미생물들이 다 죽어 순환고리가 깨져버린 땅에서 수확을 많이 내야 하니 화학비료를 쓰는 악순환이 되어 간다”고 우려했다. 김 수녀는 “먹거리로 사람들의 몸이 망가지는 게 가장 안타깝고,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것은 더 안타깝다”면서 “이 생태공동체가 작지만 생명을 살리고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수녀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수도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마음과 몸이 아픈 분들이 이곳에 와서 힐링해 부활의 삶을 사는 데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수녀의 닭장일기

이 생태공동체의 소박하면서도 즐거운 생태적 삶은 최명순 수녀가 다음 카페 ‘진동 요셉의 집(https://m.blog.daum.net/jindong07)’에 연재하는 닭장일기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미미 녀석이 요즈음 나를 보는 태도가 싸하다 못해 무관심하다. 내가 닭에게만 신경을 쓰고 저에게는 맛있는 것을 챙겨주지 않으니 볼일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미미에게 훈계를 하였다.… 개새끼 관심을 받으려고 유치하게 떠들고 있는 내가 웃겨서 미미에게 대화를 그만두고, 부엌에서 육수를 내고 난 멸치 몇 마리 가져다 미미에게 줬더니 좋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진동 공동체에서는 동물까지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다.”(필립 네리 수녀의 ‘닭장일기’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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