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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베트남 이주민의 ‘입과 귀’ 돼준 할아버지 봉사자

20년간 베트남 이주민의 ‘입과 귀’ 돼준 할아버지 봉사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 류시황 통역사, 1000여 명에게 봉사… 한-베 가톨릭 용어 사전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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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8 발행 [1602호]
▲ 류시황 봉사자가 서울 이주사목위원회 베트남 공동체 성당에 걸린 베트남 순교성인 그림을 가리키며 베트남어 단어를 설명하고 있다. 손에 쥔 것은 그가 만든 한-베 가톨릭 용어 사전.



20년 동안 1000명이 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입과 귀가 되어준 인물이 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 베트남어 통역 봉사를 하는 류시황(토마스 아퀴나스, 82, 서울 수유동본당)옹이다.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그는 퇴직 이듬해인 2001년 이주사목위에서 통역 봉사를 시작했다. 청소년 쉼터 ‘모퉁이’에서 봉사를 하던 중 이주노동자 상담실장 정순옥(요세피나) 수녀를 우연히 만난 게 계기가 됐다. 베트남어는 1966년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4년 동안 태권도 교관으로 복무하면서 익혔다. 당시에는 훗날 베트남어 통역 봉사를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니 하느님이 나를 도구로 쓰시려고 베트남에 일부러 보내신 것 같다”며 웃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베트남인은 1년에 60~70명. 주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환자들이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힘든 이들을 병원에 데려가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도록 돕는 게 그의 역할이다. 가장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보호자’인 셈이다. 은혜를 잊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베트남을 방문한 그에게 잔치를 열어주며 감사를 표했다.

“베트남공동체에서는 저를 ‘빡유’라고 불러요. 유는 제 성이고요. 빡은 ‘큰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존칭이에요. 베트남도 우리나라처럼 유교 문화 영향이 강하죠. 독특한 점은 베트남 사제도 저를 ‘빡유’라고 불러요. 스스로는 ‘꼰’이라고 낮춰 말하고요. 우리 말로 하면 ‘소자’쯤 될까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제와 수도자도 그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두 나라말에 능한 데다 가톨릭 신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오랫동안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자연스레 한국과 베트남 교회 사이 가교 구실을 하게 됐다. 한국에 온 베트남 사제와 수도자에게는 통번역을, 베트남에 선교 가는 한국 사제와 수도자에게는 기초적인 베트남어 교육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교회 용어를 외국어로 설명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베 가톨릭 용어 사전’이다. A4를 접어 만든 소책자에 ‘감실’부터 ‘회개’까지 필수 교회 용어 112개를 가나다 순으로 수록했다. 지금도 새로운 낱말을 배울 때마다 틈틈이 추가하고 있다. 류옹은 이 사전을 늘 품에 지니고 다닌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양국 사제ㆍ수도자를 만날 때 선물로 나눠주기 위해서다. 그는 “이 사전이 선교와 사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옹은 베트남어 통역 봉사를 통해 “스스로 필요한 인간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신부님이 교회 안에서 베트남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네 군데에서 전부 저를 추천했대요. 그때 ‘그동안 하느님의 도구 역할을 잘 수행했나 보다’ 싶었죠. 제가 특별히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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