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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이이구(바오로, 전주교구 대야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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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1 발행 [1601호]
회회
▲ 일러스트=문채현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의 쓰디쓴 술잔과 현재의 달콤한 술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이 시간 안에 살고 있는지 멍한 가슴입니다.

저는 약사로서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에 근무하였습니다. 그 시절은 아주 순탄한 생활이었습니다. 새로운 신약을 연구하는 개발 부서에서 일하였으며, 그 업무에 재미를 느끼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여 어느덧 개발부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직장의 꽃이라는 이사를 바라보는 자리였습니다. 정말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신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란 만큼 부모님은 연로하시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자식 중에 누군가는 모셔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저희 형제가 칠남매인데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삶의 터가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약국이라는 자유업이 있어 내려와 지금 항상 감사하며 사랑하는 헬레나와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남들이 일하고 결혼하였다고 할 정도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세월 가는 줄을 몰랐으므로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36살에 결혼하였습니다. 현재 저의 나이는 64세 닭띠입니다.

그렇게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약국을 개설하고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도 주시어 부모님께서 안아주시도록 하여 주시었습니다. 손자 손녀를 안고 부모님께서는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객지 생활을 하다가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반가워 많은 친구를 만났고 허심탄회 하는 마음으로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마음을 털어놓고 어울렸던 친구 중의 한 사람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보증을 서준 것인데, 무려 15억이라는 채무를 나에게 안겨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모든 재산을 잃고 그로 인하여 부모님도 한 해 걸러 돌아가시어 부모님을 모시러 왔다가 부모님의 인생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 부모님이 사시던 시골의 고향 집으로 가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였지만, 대부분 친구가 외면하여 서서히 멀어지고 한 친구만 도움을 주었습니다. 흩어져 있는 개인의 작은 빚이라도 청산하고 시간을 가지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 상당의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그 모든 노력은 세상의 틀 밖으로 벗어나 버렸습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그 친구의 부채 값으로 모자란 것이지만 나머지 집과 땅을 이전하여 주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나면 우리 모든 가족이 거리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사정하여 살고 있는 집에서 월세로 살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둠 속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쌀독에 쌀이 없으며 한겨울에 난방할 여유가 없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무엇인가? 가정을 이끌어갈 경제적인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무엇을 다시 하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하여 온 것들이 약학 공부밖에 없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이제 정말 하루 생활할 양식마저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약국 할 때에 자주 만났던 다른 친구를 찾아가기 위하여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전화했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내 나름대로 베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며칠 공을 치다가 모텔에서 낡은 침대를 교체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종일 무거운 침대를 끌고 땀을 흘렸는데 손에 들어온 돈은 5만 원이 고작이었습니다. 지난날 50만 원도 하찮게 쓰던 때를 생각하니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은 지낼 수 있는 돈이었으므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헛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체구도 작고(키 165cm, 몸무게 56kg) 힘이 별로 세지 않은 몸으로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도 생활의 어려움으로 경제적인 도움은 줄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갔습니다.

이러한 것이 절망이라는 것인가?

너무나 큰 빚이 커다란 산이 되어 짓눌러 오는 상황에 헤쳐날 수 있는 희망은 바늘구멍만 한 빛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믿음의 빛마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이 까맣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허무하여 집안에서 가장 고운 줄을 골라 소주병을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따스한 봄날, 줄을 나무에 걸고 마지막을 준비할 때 발아래 고사리가 있었습니다. 살포시 오그린 아기 손이 눈길을 끌어당겼습니다. 조용히 내려와 하나를 꺾는데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골을 이루어 피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손안에 담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습니다.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왜 그것을 버리려고 하는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물 속에 잠겨있던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바오로야, 이 세상에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너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성당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형제자매님들이 많단다.” 많은 얼굴이 눈물방울 위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고사리 한 웅쿰을 들고 산을 내려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내에게 주고, 예수님 십자가고상 앞에 엎드렸습니다.

돌아보니 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몇 달을 넘어 오래되었었습니다. 엎드려 있는 가운데 다시 말씀이 들렸습니다. “너를 본 지가 오래되었다. 너는 문을 두드리지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한데 어떻게 너의 사정을 알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겠느냐?”

다음날, 미사가 없는 시간에 다니던 대야성당에 나가 성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조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은은하게 비쳐오는 성체의 불빛만이 나의 모든 것을 감싸주었습니다. 숨결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운데 말씀이 들렸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야,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랜만에 평온한 얼굴을 한 나의 얼굴을 본 아내는 무슨 일이 잘못되어 내가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러던 며칠 뒤에 의약품 도매상을 하는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신용불량자일지라도 약사의 사정으로 약국을 하지 못할 때 대신해서 단기간 근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산되고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비쳐왔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의 소개로 한 달에 며칠 하는 단기 약사를 이곳저곳에서 할 수 있게 되어 아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드리지 못하였던 미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다시 전에 하던 레지오와 성가대, 작은형제회와 사랑 나눔 봉사에 참여하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면 세상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2년여 지난 후 사목회 임원으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떠돌이 약사 생활이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듯 어디선가 일자리가 생겨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이어질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만나가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의 소개로 약국에 정식 직원으로 근무약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불행의 불씨를 낳는 길이었습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므로, 세상에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다시 떠돌이 약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매일 집에 찾아오고, 떠돌이로 이 약국 저 약국 근무하는 데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인력사무소 소개로 막노동하는 것보다는 좋은 환경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께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말고 조용한 하루가 되어 주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미사에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사목회를 비롯하여 단체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살림살이에 대한 압류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응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저에게는 처분만 바라는 속수무책이며 막막한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모든 집안 살림살이를 압류당하였습니다. 텅 빈 집안의 공간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을 끝내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나를 버리고 달아났던 친구가 가져갔던 오천만 원 상당의 가계수표가 부도가 나 고발당하여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저의 사정을 헤아려 약식 기소로 벌금형으로 하자고 하였지만, 그것마저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해 한 해가 서서히 저물가는 10월, 딸이 수능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딸의 삶의 진로도 생각하여주지 못하는 처지…. 아무 말을 못 하였습니다.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꽉 막혀 숨구멍마저 막아버렸습니다. 딸의 방에서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딸의 흐느낌이 눈가를 흘러 가슴에 고드름처럼 맺히는 차가운 얼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산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하느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죄가 많은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 죄를 깨닫고 속죄하며, 주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아직도 씻어지지 않은 죄가 많기 때문입니까? 제가 그렇게 죄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의 먼지처럼 흩날려 버리시어 흔적조차 지워버리십시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저 스스로 모든 것을 마치려 합니다.”

그렇게 밧줄을 손에 잡고 얼굴 앞에 들고 있는 순간, 살아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온 생각을 덮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에 싸여 있으면서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리하실 수가 있을까?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일까?

요즘 세상에 비추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호의호식하실 수도 있었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 좋은 것을 모두 버리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음의 길로 가셨을까?

레지오 회합 때, 하느님께서는 이 죄 많은 세상을 노아의 방주처럼 멸망시켜버릴 수도 있으시지만,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마지막 아드님까지 보내시어, 그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바치게 하셨다는 수녀님의 훈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삶 중에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은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더 굳고 단단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신 말씀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련과 고통은 무엇인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교만과 자만의 삶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재물의 허세와 위선으로 허황된 포장을 하고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저 죄로 흙탕물이 된 얕은 물 한 모퉁이에서 제 잘난 멋에 팔딱거리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한편에서 달그락거리며 돌덩이들이 굴러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원한 비가 내려 뜨거워졌던 마음의 불을 꺼버렸습니다. 어느덧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천천히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왔고, 예수님을 찾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필사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농사도 시작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 틈틈이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동네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약국 일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기도와 성경 필사를 하며 평일에는 약국으로 출근하고, 토요일과 주일날 미사 후 남는 시간에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내 헬레나는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와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 여자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텐데, 시간이 나면 조용히 성당에 나갔다가 돌아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마도 성체조배를 하며 기도드리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 중에 나의 아내 헬레나의 삶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면서도, 초등부 교리교사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한순간 따가운 가시처럼 다가왔지만, 바라보면 볼수록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있던 모든 것을 녹여 사랑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손이라도 잡아주려고 다가갔는데 손과 발에 딱딱한 각질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손을 내려놓고 달밤에 담배 한 대를 길게 피웠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나를 버리지 않고 흩어진 나의 마음을 추슬러 주며, 성당 안에서 어린아이와 어울려 밝게 살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인내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고통 중이라도, 사랑하면 이렇게 살 수 있어요.” 하고 하느님 나라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하였던 따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등에 업고 다시 약국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생활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또다시 세상에 내가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더욱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 약국 저 약국으로 방랑자와 같은 떠돌이 약사 신세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 떨어졌지만, 주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며 살아왔는데, 세상의 무거운 짐은 나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삶의 의욕이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결국, 다시 방 안에 갇혀 세상을 한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절망 속에 술독에 빠져 헝클어진 머리와 더부룩한 수염으로 몰골이 흉악한 저에게, 어느 날 수녀님께서 찾아오시어 손을 잡아주시며 기도해주시고, 욥기의 이야기를 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하루가 멀다고 아침 새벽에 찾아오시어 “바오로야 죽었냐? 살아 있느냐?”하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시고, 어떤 형제님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전화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찾아와 위로의 술잔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 일러스트=문채현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멈추었던 성경 필사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천호성지와 나바위성지, 해미성지, 미리내성지, 숲정이성지를 비롯한 많은 성지를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 덮인 미리내 성지를 돌아보고 있는데, 수녀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곳을 찾아보라며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신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는 기도 자리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어떤 고통도 슬픔도 나에게는 한낱 먼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순교자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의 손바닥과 발등에 통증이 왔습니다. 이러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자 나를 망가뜨린 원수를 찾아 죽이고 싶었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4년입니다. 성경 통독을 하고 필사하며 묵상하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용서하였지만, 현실의 빚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왔습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내놓았었지만,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이자가 불어 7억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산신청을 하였는데 내가 약사라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면책받은 판례가 없다고 하며 난색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충실하게 미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나를 위로하여 주셨던 수녀님과 형제자매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 전에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준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끌어오던 성경 필사를 마침내 5년 만에 마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미사 중에 신부님께서 성체 축성기도를 하실 때 눈을 감고 기도를 듣고 있었는데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모든 형제자매님의 모습이 천사들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떨리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미사가 진행되고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형제자매님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나도 밝게 웃으며 인사하였습니다. 그날 미사를 드리고 성당을 나설 때 구름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적같이 모든 빛을 탕감해주는 면책 판결이 내렸습니다.

면책이 판결된 해가 2012년입니다. 면책 판결이 난 후에는 채권 추심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장기간 근무약사로 일할 수 있었으므로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드릴 때 감사의 눈물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모든 일에 힘과 용기가 생기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통장에도 조금씩 돈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 집과 땅을 넘겨주었던 친구가 집문서와 땅문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자신도 한때 어려워 넘겨준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오갈 데가 없을 것 같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처음 빚진 금액만 지불하면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는데 시세에 따른 자금이 부족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그 친구가 해결하여 준 것입니다. 친구의 손을 잡고 한동안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 면책자 신용불량이 해제되었습니다. 2020년 올해는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지나간 청춘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교만과 자만으로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랑의 채찍을 드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많은 형제자매님과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고난의 시간이 있기 전에 자주 다투고 싸웠던 아내 헬레나…. 비록 가진 재산은 별로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같이 견디며 살아준, 저희 아내 헬레나와의 사랑이 부서지지 않고 이제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성경 통독을 하게 하여 주신 주님의 은총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주시어 저와 가정을 평화롭게 하여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왕에 주실 것이면, 일 년 치, 십 년 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왜 하루분만 주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 말씀 안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세월이 지난 후에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이겨낼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헤매지 말고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하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행복과 고난, 그리고 평화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으셨을 때,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가 성모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 뛰듯이 나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영원한 구원자이신 목소리께서 나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여 뛰어놀게 하십니다.

지난날, 나에게 주어진 시련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그 고통의 굴레에서 풀어주신 것 또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뜻대로 하소서,” 아멘.



전주교구 대야성당 이이구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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