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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유머의 은혜(백강희 체칠리아,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조교수)

[시사진단] 유머의 은혜(백강희 체칠리아, 한남대 정치언론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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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1 발행 [1601호]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과 회의 등이 익숙한 요즘, 최근 오랜만에 지인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겨 “얼굴 좋아 보인다”는 인사를 건넨 적이 있다. 지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멋쩍은 듯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순간 실언을 했음을 직감했다. 비록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일지라도 안부를 묻는 인사가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의미로 해석된 것이다. 감정이 상하는 말은 물론이거니와 듣기 좋은 말일지라도 누군가로부터 평가받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외모에 대한 평가를 담은 대화가 오갈 때는 서로 간 감정이 상하기 쉽다. “얼굴 좋아 보인다”, “살 빠진 것 같다.” “혈색이 안 좋다” 등 흔히 사용하는 인사말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의 경우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세심한 주의는 필수적이다.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타인의 외모를 웃음 소재로 삼거나 조롱하는 발언을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출연진들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에 자막, 효과음, 배경음악 등이 화려하게 입혀지면서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배가 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을 통해 방송영상콘텐츠에서 재현되는 언어 사용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오락ㆍ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웃음과 재미를 유발하려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상대방의 외모나 인격을 비하하는 내용, 또는 연령ㆍ학력ㆍ직업ㆍ장애ㆍ계층ㆍ지역ㆍ인종 등과 관련하여 편견을 조장하거나 조롱ㆍ모독하는 표현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인의 외모, 말투, 성격 등을 소재로 삼는 소위 ‘웃음 코드’는 주로 오락·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 오락적 요소가 짙은 장르에서 주로 활용된다. 그러나 더 엄격한 제작 윤리 기준이 작동되어야 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부적절한 언어 사용 사례가 심심찮게 지적되는 경우를 보면 유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재차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 사용에는 대상에 대한 개인의, 혹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편견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부적절한 언어의 지속적인 사용은 대상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편견을 더욱 강화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발언의 목적이 웃음 유발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타인의 외모나 성격 등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것이라면 결론적으로 유머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된다.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나 홀로 집에’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화의 주제곡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와 그의 오랜 동료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눈 대화는 유머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존 윌리엄스는 2016년 미국 영화연구소(AFI)가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1993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 작곡을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스필버그 감독과 완성 전 가편집본을 감상한 존 윌리엄스는 “스티븐,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합니다. 저보다 더 나은 작곡가가 필요해요.” 라고 말하자 스필버그 감독은 아주 상냥하게 “알아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었어요.”라고 답했다고 회고했다. 추측건대 ‘그들’은 베토벤, 모차르트 등 오래전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작곡가들을 의미한다. 청중들은 스필버그의 유머와 그와의 오랜 우정에 감사하는 윌리엄스의 수상 소감에 일제히 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이처럼 유머의 초점, 즉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유머는 화평을 싹 틔우는 은혜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시청률에 예민한 방송사는 시청자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나 감성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튜브,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의 콘텐츠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행어, 축약어, 비문법적 표현 등에 친숙한 시청자들의 채널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위 유튜브 문법, 화법 등을 차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좋은 방송은 좋은 시청자가 만들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좋은 언어 사용, 대화법을 통해 유머의 은혜를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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