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신앙단상] 길을 걷는다는 것은(유별남 레오폴도, 사진가)

[신앙단상] 길을 걷는다는 것은(유별남 레오폴도, 사진가)

Home > 여론사람들 > 신앙단상
2021.02.21 발행 [1601호]



몇 년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K2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트레킹을 했습니다. 워낙 악명 높은 산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상상 속 태양 빛에 빛나는 멋들어진 하얀 빙하가 아니라 자갈이 빙하를 뒤덮은 너덜지대에서 길을 만들어 가며 헤쳐 올랐습니다. 한여름이었지만 얼음 위에서 자는 일은 ‘눈물이 찔끔’ 나는 고통의 밤을 겪게 하였고 발바닥은 자갈밭처럼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빨리 올라갔다 내려갈 생각만 하며 바닥을 보고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어느덧 저 멀리 K2가 보였습니다.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거산은 수많은 등산가의 무릎을 꿇게 했던 위압감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일이면 저 산 바로 밑에 다다를 수 있다는 설렘이 그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부터 크레바스가 입을 쫙쫙 벌리고 있는 거친 빙하지대를 거슬러 올라 마침내 K2 바로 밑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저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눈앞에 K2를 두고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그 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산 바로 밑에 가니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이곳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왜 산이 보이지 않는 거야!” “이 순간을 놓치면 언제 다시?” 하는 초조함이 저를 내몰았나 봅니다. 허탈감이 나를 둘러싸고 내 어깨는 축 늘어져 있을 때 바람결에 들리는 목소리.

“별남! 뒤를 돌아봐, 네가 걸어온 저 길을 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저 빙하지대를 정녕 제 발로 걸었습니까? 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공포의 크레바스들을 제가 직접 건넜나요? 저렇게 황량한 무인지대를 제가 통과했다고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새벽에 너무 추워 눈물을 흘릴 때 올려다본 하늘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별들의 축제가 있었는지. 달빛에 영롱하게 빛나던 밤의 우윳빛 빙하가 얼마나 매혹적이었었는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길을 걸어왔으며 누가 항상 나와 같이 그 길을 걸었는지를!

걸을 수 있는 길을 주시는데 왜 힘들다고 멈추려 하고 지루하다고 다른 길을 찾아 헤매기를 반복했을까요? 내가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을 주시는데, 왜 마냥 힘들다고 했을까요? K2 밑에서 주님께서 주신 내가 걸었던 삶의 길을 돌아봤습니다.

나를 깨닫게 하는 이는 주님밖에 없으니 주님이 곧 저의 길이옵니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