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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우리 동네 할머니

[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우리 동네 할머니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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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발행 [1600호]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해발 55m를 ‘자랑’하는 성미산.

오르내리는 길이 낮지 않아 나름 숨을 헐떡이게 되는 이 산꼭대기 주택가에 사는 나는 한 이웃 할머니와 거의 매일 스치듯 만나곤 한다. 가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모시고 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수레를 끄시면서 종종걸음으로 동네를 오르내리시는 모습일 때가 잦다. 골목길 여기저기에 놓인 폐지나 옷가지, 고철류들을 모으시는 할머니와는 특별히 친분이 있거나 살가운 인사를 주고받을 만한 사이까지는 아니다.

7년 전 이곳에 보금자리를 두었을 때 동네 여기저기를 오가시는 할머니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당신의 힘차고 당당한 걸음걸이에 눈길이 갔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 스치는 인연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일 뿐 할머니는 눈길 한번 안 주신 채 그저 당신의 하시는 일에 거의 몰두하신다. 여전히 그러하다. 물론 7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당신의 외양에 변화를 끼치기도 했다. 늘 푸석푸석한 파마머리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할머니는 이제 검은 염색물이 다 빠진 온전히 하얀 머리칼을 그대로 내어놓고 다니신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를 휘날리시며 예의 그 힘차게 거침없는 걸음을 유지하시는 것을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경사도가 제법 있는 동네 골목길을 휘저으시며 당신의 ‘수집품’을 한가득 모아 귀가하실 때는 특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신데 그런 모습을 볼 때 역시 덩달아 마음이 들뜬다. 어찌 보면 생계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몸을 놀리기 싫은 당신 삶의 부지런한 일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또는 손주들 용돈을 직접 내어주고 싶은 의지일 수도 있다는 공연한 상상도 해본다. 친분은 없어도 정은 쌓인 탓일까. 이 느낌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으나 그런 상상을 하며 할머니의 존재성을 느끼는 스침의 시간이 그리 싫지가 않다. 명색이 사진하는 사람이지만 일부러 훔치듯 할머니의 모습을 사진 찍는 일은 없다. 언젠가 한번은 큰 길가까지 나오신 할머니를 마주했다가 당신의 떠난 자리를 공연히 찍어둔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가끔 할머니가 필요하시다 여기실 만한 물건들을 당신의 집 앞에 갖다놓을 때도 있다. 버릴 것이 아니라 여전히 쓸만하거나 아니면 ‘돈’이 될 만한 그 물건들을 내려놓을 때는 혹시나 문을 열고 나오실까봐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언젠가 한번은 그 물건들 중 하나인 스웨터를 입고 계신 것을 보고 모른 척 흐뭇해 한 적도 있다. 이제 그만 망설이고 환한 웃음 한번 섞어 제대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은 요즘 주변의 삶을 살피거나 관계의 의미를 새기는 일이 손쉬운 일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먼저 인사 한번 건네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는가. 금세 할머니의 화답이 올 수 있지도 않을까.

“내가 계속 지켜봤는데 딸아이가 아주 예쁘게 생겼수~ 이름이나 좀 알려주시우~” 하고 말이다.

▲ 임종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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