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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 - 그분과 함께 머물러라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 - 그분과 함께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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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발행 [1597호]



자신이 바라던 것을 주님께 청했는데도 기대한 대로 이루어주시지 않을 때, 우리는 보통 주님께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인간은 관심을 두지 않은 말을 흘려듣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말을 들은 체 만 체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하는 말을 하나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경청’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기를 보면 그런 주님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돼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1사무 3,19)

내가 당신께 드리는 어떤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니, 참으로 감동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려면 우리 편에서도 한 가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참된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러자 요한의 두 제자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를 잘 들어보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이 질문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신앙을 통해 개인적으로 원하고 바라는 그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주님으로서 주님이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즉 신앙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여정 안에서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거기서 어떤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디에 묵고 계시느냐’고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 얻겠다는 마음입니다. 여정 자체에 머무르지 못하고 목적지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분 안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외적인 환경을 통해 대충 가늠하려 드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분과 함께 걷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수 없지요.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장소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머무르는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기꺼이 그들을 당신 곁으로 초대해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고 생활하면서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 존재의 근원에 대해, 또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조금씩 배우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추구해야 할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예수님임을, 그분과 함께 머무르는 삶 자체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묵은 후, 두 제자는 그분께서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이심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묵었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메네인’(μενειν)은 ‘어떤 것 안에 머무르다’, ‘누구와 함께 친밀하게 일치하다’는 뜻으로 요한 복음에서 성부와 성자, 성자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를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머문 것은 단지 같은 공간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면서 깊은 친밀감 속에 ‘존재적 일치’를 이룬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 안에서 구원을 희망하며 삼위일체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이루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와서 보아라.”





함승수 신부 (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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