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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32-끝> 생드니교구와 오영진 주교님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32-끝> 생드니교구와 오영진 주교님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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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발행 [1594호]


처음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다.

막상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멀리 이곳 프랑스에서 끝까지 글쓰기에 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대구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로 나의 염려를 전하니, 동생의 즉각적인 응답은 “기도하면서 쓰시면 된다”였다. 이 단순하고도 힘찬 동생의 한마디 안에 믿음, 희망, 사랑이 다 포함돼 있었다. 그다음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도 마음에서부터 일어났다. 글을 쓰는 1년 동안 행복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신앙의 신비이다.

오랜 수도생활을 해오면서 적지 않게 신부님들, 본당의 신자들, 그리고 수녀원 주변의 이웃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중에서도 1996~2008년 프랑스 생드니교구 교구장이셨고, 한국 사랑이 지극하셨던 고 오영진 주교님을 제일로 꼽고 싶다.

오 주교님은 프라도 사제회 사제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교구에서 노동자 사목을 하셨다. 세월이 흐른 뒤 1996년 생드니교구장으로 착좌하셨다. 그때 오 주교님 사목 지침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라는 에페소서 2장 19절 말씀이었다.

오 주교님은 여권도, 비자도 없이 온갖 난관을 겪으면서 프랑스에 들어온 이민자와 난민들의 차가워진 마음을 덮어주시고자 애쓰셨다. 특히 생드니교구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이민자들이 몰리는 일명 ‘무지개교구’다. 오 주교님은 그들이 좀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끔 정부 관계자들까지 만나 열정적으로 교섭한 끝에 체류증 발급이 가능하도록 법 제도를 완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셨다. 그야말로 사목 지침 속 사도 바오로의 아름다운 복음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면서 많이 애쓰신 것이다.

굶주림과 어려움에 지친 나그네들이 이 땅에서 어깨를 펴고 살아가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셨던 오 주교님의 건강 상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악화되어, 결국 생드니교구를 떠나셨다.

주교님은 고향인 베르사유에 있는 은퇴 사제관에서 몇 년 동안 휴양하시다가, 2017년 자애로우신 성모 성월인 5월에 찬란하고도 영원한 주님의 집으로 하얀 비둘기처럼 훨훨 날아가셨다.

그때 나는 생드니 대성당에서 거행된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대성당이니만큼 크고 웅장한 성전에는 수많은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넓은 제대 둘레를 가득 메우셨다. 너무 많은 신자가 참석하는 바람에 상당수가 선 채로 미사에 참여하며 주교님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렸다.

장례 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엄숙한 기도 속에 하나가 됐고, 착하고도 사랑이 지극하신 오영진 주교님을 생드니교구에 보내주셨음을 하느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평화로이 저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병원 환자 방문 사도직을 하도록 이끌어주셨던 오영진 주교님께 다시금 깊이 감사드린다. 또 나의 가난한 글을 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가톨릭평화신문사에 감사하며, 연재를 청탁하고 친절한 도움을 주신 이정훈 기자께도 감사드린다.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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