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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96) 언플랜드

인간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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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발행 [1594호]




영화 ‘언플랜드’는 미국 최대의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서 8년간 상담사로 일했던 애비 존스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8년간 일했으면서도 한 번도 수술실에 가본 적이 없었던 애비는 일손 부족으로 갑작스레 호출된다. 애비는 그날 처음으로 뇌를 비롯한 모든 장기와 심장이 뛰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13주 된 태아의 초음파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태아가 카테터(catheter)라고 불리는 금속 흡입관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사지가 절단되면서 기구에 빨려 들어가 핏덩이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수술이 끝난 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목 놓아 우는 애비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비참함을 깊이 느끼게 한다.

그녀는 그동안 낙태 상담을 받으러 온 여성들에게 전문가의 소견을 빌어 6~8주 된 태아는 아직 아기가 아니고 그저 휴지나 핏덩어리 같은 물질에 불과하며, 어떠한 통증도 못 느낀다고 말하며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설득했다. 그가 성사시킨 수술만 2만 2000건이 넘는다.

그녀는 대학 3학년 때, 산아제한을 자유롭게 할수록 오히려 낙태를 줄일 수 있으며 꼭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들의 클리닉만이 여성의 안전에 필수적이라고 홍보하는 가족계획연맹 직원의 말에 흥미를 갖게 된다. 특히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서 결정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에 애비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며 가족계획연맹의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 시종일관 애비가 내세우는 명분은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돕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반대로 많은 여성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애비 자신도 이미 낙태 유경험자로 두 번에 걸쳐서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두 번째 낙태는 가족계획연맹에서 제공하는 낙태약을 먹고 스스로 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한 트라우마와 8주간의 하혈, 그리고 계속되는 통증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회복하자마자 회사로 돌아갔고 위기의 처한 여성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본인의 야망 실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8년 후의 그 수술실 체험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개정안 입법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정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기존 형법 조항은 유지하면서 임신 14주 이내 낙태 불처벌, 24주 이내 조건부 불처벌, 낙태 시술법 구체화 등 신설 조항 4개를 추가하려 하고 있다. 낙태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다. 애비 역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들어 낙태를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어떠한 권리도 사람의 생명권에 우선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태아를 사람이 아닌 물질로 규정하여 법제화시키는 것뿐이다. 영화 ‘언플랜드’는 13주 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면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과연 그런 것이냐고?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시편 139,13)




강언덕 신부

이냐시오영성연구소 상임연구원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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