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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여성과 태아를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시사진단] 여성과 태아를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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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발행 [1592호]





패러다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을 말한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전환은 우리의 견해나 사고의 인식체계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전환이 왜 필요하며, 어떤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비판적 시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말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 자체에 현혹되곤 한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기존의 관점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립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낙태와 관련된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여성과 태아 모두를 위한 어떤 대안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적 관계를 극복할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모체와 태아를 일체(一體) 관계로 설정하여 모체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순위에 두고 낙태를 모체 일부를 없애는 행위쯤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태아의 생명권 자체를 부정하는 인식의 확산(죽음의 문화)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태아와 여성 모두를 위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먼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있다. 오히려 생명존중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존중, 임부에 대한 배려가 난항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낙태를 단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러한 요구나 압박은 점점 더 거리낌 없이 행하여질 것이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은 모두 임신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둘째, 태아와 모체의 특별한 유대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태아는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면서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위해 전적으로 모에게 의존한다. 그렇다고 모체를 탈진시키거나 영양분을 얻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모체와 태아 사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신비스러울 만큼 양자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철저히 존중하면서 상호 소통한다. 이 특별한 유대관계를 파괴하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이해할 때 오히려 불행은 시작된다. 모성의 자기증여는 태아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내포하면서 인간의 자기완성 모범을 보여준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셋째, 법체계를 통해 태아와 여성 모두를 보호하고, 정책을 통해 그들의 삶의 환경을 향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출산은 여성이 하지만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국가와 사회, 남성이 함께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입법과 제도 개선 등을 통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함과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내 낙태죄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 조용호와 재판관 이종석의 ‘입법자의 성찰과 모성보호의 필요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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