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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티아고, 한Ti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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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 발행 [1590호]

▲ 한Ti가는 길 시작 지점인 가실성당.

▲ 순례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하는 모습.


▲ 신자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숯가마터

▲ 신나무골 성당 내부

▲ 무명 순교자 묘소



가을이 깊어갑니다. 소박한 모습으로 삶의 향기가 있는 여행을 했으면 합니다.

나를 찾는 고독한 시간 속에 마음을 적셔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걸으며 작은 성당에서 기도하다 가는 그런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그 길이 순례길이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혼자 걷는 고독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추억을 쌓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19일부터 내년 1월 23일까지 수도자와 함께 주님을 찾아 떠나는 일곱 차례 순례길이 마련돼 있어 그 길을 소개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칠곡군이 지난해부터 마련한 ‘한Ti 가는 길’입니다.





하느님과 마주 걷는 길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 9,2)이라 불렀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살뿐 아니라 영 안에서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갈라 5,25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태생적으로 ‘순례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길 위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믿음의 길을 사랑의 발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구도자’임을 체험합니다.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닦아놓은 새로운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닙니다. 그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은 우리도 걷고 하느님께서도 걷는 마주 오는 길입니다.

‘한Ti 가는 길’이 바로 그러한 순례길입니다. 본래 이 길은 낙동강변에 자리한 칠곡군 신나무골 신자들이 1866년 병인박해 때 팔공산 중턱 깊은 산골의 한티 교우촌으로 피신했던 피난길이었습니다. 또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영남 지방에선 처음으로 1885년 신나무골에 성당에 세워지자 한티 교우촌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에 참여하기 위해 걸었던 신앙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에 왜관수도원과 가실성당을 포함해 ‘한Ti 가는 길’로 새로이 조성했다고 합니다.

‘한Ti 가는 길’ 순례 구간은 가실성당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45.6㎞입니다. 짧은 구간처럼 보이지만 산을 3개 넘고, 저수지 하나를 끼고 제방을 걸어가야 하는 녹록지 않은 길입니다. 스페인 레온주 아스토르가 라바날 델 카미노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한국인으로 최초로 5년간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사목해온 인영균 신부는 “한Ti 가는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닮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요한 곳마다 성당이 있어 쉬고, 기도하며, 성인의 유해를 참배하며 걷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룩한 곳에 머물면서 영적 힘을 얻고 걷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아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은 한Ti 가는 길을 “한티아고 순례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제대로 걷기

제대로 걸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명한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서두르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차분한 움직임이 걸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걸음은 고귀하고 경건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제대로 걷는 이는 곧게 서서 가지 굽히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순례길은 고귀하고 경건한 걸음으로 제대로 올바르게 걷는 길입니다.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느님과 마주 걷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걷던 여럿이 함께하던 이 길은 보속의 행렬이고 참다운 기도입니다. ‘순례길의 치유자’인 인영균 신부는 “나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는 게 순례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걷는 이는 순례자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Ti 가는 길’은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로 나뉘어 놓았습니다.

‘돌아보는 길’은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성지까지 10.5㎞ 구간의 숲길로 순례를 시작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길입니다. ‘비우는 길’은 신나무골성지에서 창평저수지까지 9.5㎞의 고갯길로 과거의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나를 채우는 준비의 길입니다. ‘뉘우치는 길’은 창평지에서 동명성당까지 9㎞의 비탈길로 지난 삶의 잘못을 반성하는 길입니다. ‘용서의 길’은 동명성당에서 가산산성까지 8.5㎞의 농로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입니다. ‘사랑의 길’은 가산산성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8.1㎞ 구간 십자가의 길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수도자가 동행하는 순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수도자가 동행하고, 저녁이면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인영균 신부가 순례길을 주제로 강의도 합니다. 또 새날 새 아침 순례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에게 수도원 전례 안에서 그들을 축복합니다.

이처럼 제대로 걷는 걸음은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신명 8,6)는 성경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올해 ‘한Ti 가는 길’ 순례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매회 20명 선착순으로 순례자들을 모집해 함께 걷는다고 합니다. 참가 문의는 왜관수도원 피정의 집(054-971-0722, 010-6791-0071)로 하면 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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