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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후 베이비박스 아이 줄어… 낙태가 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헌재 결정 후 베이비박스 아이 줄어… 낙태가 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 (2)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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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2 발행 [1589호]
▲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18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이런 일 없게 하려고 베이비박스 만들었는데…

1805명. 지금까지 서울 관악구 난곡로에 있는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 숫자다. 지난 3일 새벽, 베이비박스에서 2m 떨어진 드럼통 아래에서 싸늘하게 식은 아기가 발견됐다. 6시간 동안 드럼통 위에서 추위에 떨었던 아기는 세상을 떠났다.

어두운 밤, 미혼모는 베이비박스 위치를 헷갈렸을까.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을 위해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가 운영됐지만, 아기가 베이비박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죽은 일은 처음이었다.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알림음이 울리고, 바로 뛰어 나가 아기 엄마를 만나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66) 목사를 11일 만났다. 3일 사고가 있은 후, 그 사이에 4명의 아기가 더 들어왔다. 아기가 생명을 잃은 드럼통 앞에는 젤리와 우유, 아기 옷, 핫팩과 꽃다발,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 지난 3일, 베이비박스 앞 드럼통에서 발견돼 목숨을 잃은 아기를 추모하는 편지글이 놓여 있다.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는데, 베이비박스 앞에서 이런 일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지 않아도, 이 앞을 지나가도 소리가 나도록 안전장치를 할 예정입니다.”

이종락 목사는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주제는 생명”이라면서 “생명을 빼놓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미혼모가 아기를 안고 왜 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겠습니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제주에서 비행기를 못 타고 16시간 동안 배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마가 하혈하면서요. 태반까지 달린 채 교복에 쌓여 오는 아기도 있습니다. 산에 묻으려다가 울음소리에 차마 묻지 못하고 데려옵니다.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들은 버려진 아기들이 아닙니다. 엄마로부터 지켜진 생명이지요.”

이 목사는 “왜 미혼모들이 베이비박스까지 올 수밖에 없는지, 미혼모는 왜 이 사회에서 냉대와 멸시, 소외를 당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며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가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계기가 있었다. 2007년 4월, 아기를 키울 사정이 안 된다는 한 아빠가 문 앞 생선 상자에 아기를 두고 간 것. 생선 냄새가 나는 상자에 놓인 아기를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열선 처리를 한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직접 설치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긴 60%의 엄마는 10대 미혼모다. 30%는 기혼자가 외도로 출산한 아기들이다.

“벨이 울리면 무조건 뛰어 나가 아기 엄마를 만나 상담을 합니다. 미혼모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저는 무조건 ‘열 달 동안 낙태하지 않고 출산한 것은 잘한 일이다’, ‘여기에 잘 왔다, 네가 아이를 지켰다’라고 말해줍니다.”

차분하게 앉아 위로해주고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3시간은 금방이다. 그는 성(性)은 신이 주신 축복이지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의 무지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며 여기까지 왔으니 다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짧은 성교육을 겸한다.

“지금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가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정말 아기를 포기할래?’라고요.”

마음이 돌아선 미혼모는 눈물을 닦고 묻는다. 졸업할 때까지, 취직할 때까지, 집을 얻을 때까지 아기를 돌봐줄 수 있는지. 30% 아기는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주사랑공동체는 미혼모 생활비와 주거지원도 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들은 112에 신고를 한다. 지구대가 와서 정황 조사를 한 후 DNA 검사를 한다. 관할 구청에서 아기를 데려가 종합병원에서 검사한 후 건강한 아기는 영아 일시보호소에서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장애가 있으면 입양이 어려워 시설로 옮겨간다. 관할 구청에서 아기를 바로 데려가지 못할 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주사랑공동체에서 아기를 돌본다.

“아기들이 많을 때는 13명까지 있었습니다. 한 방에 눕혀 놓고, 밤새 분유 먹이면서 쪽잠을 잤습니다. 그때는 봉사자들도 없어 이러다가 죽겠구나 하는 위압감을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우유 줄 때 방긋 웃고, 옹알이하는 아기들 덕분에 버텼습니다.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의 특권이에요.”



태어날 권리조차 박탈당한 아이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나서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영아들이 현저히 줄었다. 이 목사는 저출산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이미 낙태가 더 자유로워진 것으로 판단했다. 장애를 가진 아기들은 이미 태어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고 호소했다. 해마다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200명을 웃돌았지만 2019년에는 170명, 2020년 현재는 11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목사는 신상현(한국남자수도생활단장협의회 생명문화위원장) 수사, 차희제(프로라이프 의사회) 회장 등 가톨릭계 생명 운동가들과 10년 넘게 낙태 반대 운동에 함께해왔다.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두 번 만난 일이 있다”면서 “생명사랑이 대단하셨고,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목사가 함께하고 있는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는 지난 5일 베이비박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밀출산제’ 도입을 촉구했다. 비밀출산제는 산모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한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는 “낙태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낙태는 곧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생명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은 내 생명이 죽는 일임을 뼈저리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낙태죄 폐지 입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보면 과격한 표현으로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자궁 안에서 이리저리 피하고 다니다가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도와주는 이 없이 울다 지쳐서 힘없이 죽어가는 태아들을 기도 중에 환청과 환상으로 만난다”고 털어놨다. 두 자녀가 있는 이 목사는 지난해 33년 동안 전신마비로 누워 살았던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그는 아들의 눈빛과 웃음 속에서 주님을 뵀다고 말했다.

“생명을 살리는 운동에는 종교와 종파가 따로 없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가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태아의 생명은 부모의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인격인데 ‘죽이니, 살리니’ 할 수 없지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인권은 나라가 책임져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 목사는 두꺼운 파일을 건넸다. 아기를 맡기는 부모들이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예방접종 주사는 어디까지 맞혔는지, 하루에 분유는 얼마나 먹는지 등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 키우고 싶었는데 혼자는 못 키울 거 같아서…”, “부족한 엄마를 용서해달라” 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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