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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와 아이의 행복과 불행 단정지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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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 (1)고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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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발행 [1588호]



낙태죄 전면 폐지를 향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낙태죄 전면 폐지에 관한 국회 청원은 지난 3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원회로 넘겨졌다. 정의당은 ‘낙태죄 완전 폐지 3대 법안’을 5일 당론으로 발의했다. 낙태죄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허용 주수, 사유 제한 없이 임신을 중단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법 개정 시한으로 정한 12월 31일까지 ‘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을 싣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낙태와 생명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생명을 향한 시선(視線)이 선(善)을 향할 때, 그 선(善)이 ‘살아갈’ 길을 찾기를 바라면서. 정리=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①고 김수환 추기경

한국 사회의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60년대부터 선종 때까지 생명사상을 몸소 보여준 분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사상은 추기경이 대사회적인 활동을 하게 한 내적인 뿌리였다. 김 추기경이 활동했던 1960년대부터 50년간 한국 사회는 출산 억제를 권장하다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김 추기경이 생전 낙태와 생명에 관해 남긴 어록(강론ㆍ사목교서ㆍ인터뷰)을 바탕으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 김수환 추기경이 2005년 5월 15일 서울 성북동 성가정입양원을 방문, 새 가정을 기다리고 있는 아기들 재롱을 보고 있다. 김 추기경은 매년 5월 가정의 달에 성가정입양원을 방문해 미사를 집전하고 입양원 관계자들을 격려해왔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추기경님은 1973년 우리나라에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 전 모자보건법을 강력히 반대하셨습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의 비인간성을 마치 싹트는 꽃잎을 칼로 절단하는 것이라고 비유하셨지요.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무시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는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도록 사회 풍조를 정화시키는 데에 부심해야 할 터인데, 낙태 허용범위 확대를 법제화하겠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태아에 대한 생명멸시는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를 살해해도 좋다는 풍조가 범람할 것이 분명합니다. 싹트는 꽃잎도 고의로 칼로 절단한다면 잔인하다고 보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거늘, 어찌하여 사람의 어린 목숨을 난도질하여 잘라내는 데는 무심할 뿐 아니라, 이를 장려하게까지 되었는가요? 이래도 우리는 윤리적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인간이 윤리를 벗어나면 바로 짐승입니다. 짐승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짐승입니다.”(특별 사목교서 ‘모자보건법 제정반대’ 1970년 7월 21일/ 묵상 글 1975년)



▶추기경님도 아시지요. 여성들은 그동안 임신과 출산, 양육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무책임한 남성에게 양육비를 받느니 차라리 낙태할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현대는 이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한 프로그램에서 임신 3개월의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를 가진 어머니가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아기를 낳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상당수 여성들이 낳지 말아야 한다는 편이었습니다. 말인즉 어머니인 그 젊은 여성의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서, 그리고 유복자로 태어날 아이의 불행한 장래를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여성이 아기가 따르지 않으면 더 자유로운 몸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그 여성이 반드시 행복하게 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보장은 없습니다. 더구나 자기 자식을 죽이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어머니의 행복은 무엇입니까? 태어날 유복자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유복자가 아버지 없이, 또 어머니 없이 자라게 된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반드시 그 구체적인 존재, 유복자가 불행해진다는 절대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은 모릅니다.(평협 신앙대학강좌, 1981년 3월 20일)



▶그 아이가 불행해진다는 절대성은 없지만 행복할 것이라는 절대성도 없지 않습니까? 행복도 불확실한 시대에 불행이 전제된 한 인간의 생을 탄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개연성을 말합니다. 대체로 불행해진다고…. 그럼 그런 개연성에서 말한다면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됩니다. 인생고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죽습니다. 그럼 이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미리부터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으나 참으로 타당합니까? 무엇보다도 고통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럼 고통 때문에 사랑을 피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그것이 인간다운 것입니까? 인간의 인간다움은 고통을 오히려 인간답게 마주 보고 이를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지 않습니까?”(평협 신앙대학강좌, 1981년 3월 20일)



▶추기경님, 낙태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다고 합니다. 개방적인 성 문화로 인해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생명교육이 아닌 피임교육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의 심리에 자기의 모태에서 자라는 아이를 죽일 만한 마음이 되면, 아무리 경제가 발달해도 사랑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말살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 하면 저는 독신생활하니까 걱정 없이 남의 얘기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요. 인간이, 인간이라는 것이 뭐겠어요. ‘선’을 위해서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것이 인간적인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성의 문제는 인간이 자기 컨트롤을 못할 만큼 개방되었어요. 이것이 과연 인간적인 것이냐, 비인간적인 것이냐, 이런 성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인구문제 등은 결국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고 있어요. 성이란 것이 가장 소중한 인간의 것, 서로 남녀가 신성하고 소중하게 주고받는 것인데 말이에요.”(「주부생활」 1981년 11월호)



▶추기경님,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 운동에 동참을 독려하는 한 말씀만 부탁합니다.


“저는 모든 생명 운동에 찬동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구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 운동은 근본적으로 태아의 어린 인간 생명을 지키는 낙태 방지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의 시작이요, 기초인 태아의 생명, 그 생존권을 무시하고는 참 생명운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습니까? 세계적 낙태 자유화 추세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제시할 것입니까? 낙태 문제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서, 복음화나 교회 사회교리 실천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생명의 기본권이 부정된 곳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적극적 활동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낙태방지 심포지엄 격려사, 1991년 4월 30일 / 동아시아 평신도회의, 1992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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