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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5. 떡볶이와 잡채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5. 떡볶이와 잡채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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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발행 [1587호]


우리 동료 수녀님들은 일주일에 한 번 차례대로 요리한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이번엔 무슨 음식으로 우리 수녀들을 기쁘게 해줄까?’ 하고 고심을 조금 한다. 문득 지난 명절 때 파리 한인성당에 가서 받은 떡이 떠올랐다. 본당 성모회 자매님이 예쁘게 썰어놓은 가래떡을 선물로 준 것이다. 아뿔싸. 그런데 간장과 참기름이 없어 어쩌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행스럽게 친절한 한국인 친구가 다른 음식 재료들과 함께 갖다 준 간장과 참기름도 받은 것이 기억났다. 옳지. 오늘은 떡볶이다!

떡볶이는 한국에 있을 때에만 먹어본 우리 음식이다. 그런데 사실 먹어만 봤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떡볶이 레시피’를 숙지했다. 닭고기, 쇠고기, 채소는 항상 냉장고에 있으니 무작정 시도해보려던 차에 그 친구는 걱정됐던지 요리책에 나온 제대로 된 과정을 메일로 다시 한 번 보내줬다. 떡볶이에 자상한 친구의 우정의 맛까지 곁들여졌다.

의외로 요리 시간이 꽤 걸렸지만 만드는 내내 즐거웠다. 뚝딱뚝딱 주방에서 나는 소리에 수녀들도 들락날락하며 한국 음식에 기대를 드러내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툴긴 했지만, 정성을 다했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계란전까지 부쳐봤다. 예쁜 접시들이 내가 만든 음식들을 정갈하게 받아줬다. 골고루 얹고 보니, 떡볶이 빛깔도 더 환해지고, 내 입에선 군침마저 돌았다. 프랑스 한복판의 우리 수녀원 식탁이 이날만큼은 한국 요리로 차려졌다.

한 수녀가 한두 점 먹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려준다. “와우!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네요.” 나를 바라보며 환히 웃어주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참 좋았다. 자식을 먹이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살짝 들었다고나 할까. 큰 접시에 담긴 떡볶이는 단숨에 수녀들에 의해 사라졌다. 정말 한 입도 남지 않았다. 만에 하나 남으면 저녁에 나 혼자서라도 먹으려 했었는데.

우리 수녀님들과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며 내가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이 떠올랐다. 원장 수녀님께서 한국 요리를 만들어 수녀님들과 함께 나눠 먹자고 제의했던 적이 있다. 당장 떠올랐던 건 잡채였는데, 하지만 그때 수녀원에는 당면이고, 간장이고 음식재료들이 없었다. 원장 수녀님은 수녀님 한 분을 동반해 도시로 나가서 장을 봐와도 좋다고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수녀님의 자상하신 모습에 감동했었다.

그때 한국에서 온 다른 수녀님과 나는 중국인 상점에 들러 간장과 참기름, 당면 등을 사와 20여 명의 수녀님과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아주 열심히 만들었다. 수녀님들은 난생처음 먹어보는 잡채에 홀딱 반해버린 듯했다. 그전에 한국에 있을 때 일본에 사시던 이모님이 오셔서 요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 이모님은 “음식을 만들 때 사랑을 넣어서 만들면 더욱 맛이 풍부해진다”는 조언을 하신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이 좀 흘러 나는 다른 분원으로 이동했다. 그전에 함께 본원에서 살았던 수녀님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먹었던 잡채가 너무 특별하고 맛있었다”고 다시 인사를 건넸다. 평범한 내 음식 솜씨를 잊지 않고 있던 수녀였다.

사랑의 마음은 비단 요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모님의 말씀대로 세상살이 언제든 ‘사랑’을 넣으면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요리도 더욱 맛있어지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세상과 사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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