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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1. 수녀님은 수녀님 기도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1. 수녀님은 수녀님 기도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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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1 발행 [1583호]


2003년의 일이다. 내가 꾸준히 다니며 환자들을 만나온 프랑스 오베흐빌리에 병원에 들렀을 때, 한 젊은 부인이 울면서 다가왔다. 그녀는 “수녀님!” 하고 부르더니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임종 중이니 병실에서 함께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던 터라 이미 몇 번 만나봤던 환자였다. 최근 들어 그녀의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침대 바로 옆에는 다른 자녀들이 모여 울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에서 함께 기도하기 바람을 느꼈다.

환자의 딸에게 “당신의 어머니는 무슬림 신자이고, 나는 가톨릭 수녀인데 어떻게 기도할까요?”라고 물었다. 이 여인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수녀님은 수녀님의 기도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 어머님의 손을 잡은 채 그들은 아랍어로, 나는 불어로 기도했다. 그 사이에도 자녀들은 계속 울고 있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은 아랍 사람이든 동양 사람이든 같을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이 젊은 여인이 자발적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그들의 어머니를 위하여 간곡히 기도를 요청하는 태도와 기도의 방법까지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마음 깊이 감동을 하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교와 인종의 높은 벽을 넘어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조금씩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이뤄나갔다.

한참이 흘러 지난해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서울역에서 우연히 히잡을 쓴 젊은 무슬림 여성을 마주했다. 그녀를 본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모습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누가 봐도 눈에 띄었다. 온몸을 감싼 히잡 때문이었다. 그 복장으로 그녀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 속에 혼자서 천천히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고, 나의 눈길을 유독 끌었다.

내가 오가는 프랑스 오베흐빌리에 도시는 수많은 외국인이 사는 곳이라 히잡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동안 사실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아랍 국가들과는 매우 멀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 무슬림들을 쉽게 마주한다.

내가 병원에서 전 세계 각국 환자들을 만나와서인지, 나그네인 이들의 모습이 더욱 다가온다. 그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산다. 가난한 이들, 그리고 타지에서 외롭게 사는 이들을 따뜻이 맞이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진정한 애덕 행위임을 다시금 전하고 싶다.

어디에서든 그들과 눈이 마주치거나, 혹은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날 때 사랑이 담긴 ‘미소’ 하나만 보여줄 수 있어도 그들의 추운 마음 안에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다. 나아가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다면 부드러운 작은 말 한마디 “힘드시죠”, “용기 가지세요”라고 건네보자. 별것 아닌 한두 마디는 목마를 때 시원한 물 한 컵을 손에 쥐여주는 것과 같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다. 이러한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는 외로운 외국인들에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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