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프란치스코 성인 무덤과 제대의 연결성, 순교자 공경을 드러내다

프란치스코 성인 무덤과 제대의 연결성, 순교자 공경을 드러내다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1)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Home > 기획특집 >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2020.09.13 발행 [1580호]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상층 내부.

 



성당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한방에 모여 그 고마우신 말씀에 마음의 귀를 열고 우리의 일상의 삶을 봉헌함으로써 화답하는 공간이다. 또한 그 베푸시는 상에 둘러서서 가이없는 사랑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아 모심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고 서로 한몸이 된 기쁨을 세상에 도로 전하러 나가는 집이다.

집안의 가구가 쓰임이 있듯 성당의 거룩한 공간 모두는 저마다 쓰임과 의미가 있다.

독자들이 성당 내 거룩한 공간의 뜻과 쓰임, 아름다움에 관해 올바른 이해할 수 있도록 특집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월 1회 총 12회 연재한다. 전례학자 윤종식 신부와 미술가 박원희(사라)씨가 친절히 안내한다.


-----------------------------


성인 유해 보존하려 지은 성당

“지금은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지만 언젠가는 천국의 언덕으로 불릴 것”이라고 생전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했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다. 성당의 역사는 1228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성인의 유해를 보존할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하면서 출발한다. 그 후 30여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253년 지하 경당과 지금의 하부 성당의 모습을 갖추면서 인노첸시오 4세 교황에 의해 축성됐다. 19세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대성당 내의 경당들과 장식들, 지금의 회랑, 수도원 등이 갖춰지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지하 경당, 하부 성당(Basilica Inferiore), 상부 성당(Basilica Superiore)으로 구분된다. 이는 일반적인 고딕 양식에서 볼 수 없는 이 성당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고, 이 특징 때문에 일반인들 눈에는 좀처럼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비치지 않는다. 이러한 이탈리아 고딕의 특징들은 이후 이탈리아 수도원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이 성당을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성당 내부 장식이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내부는 프레스코화들로 뒤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부 성당에 그려진 벽화들은 치마부에, 로렌제티, 마르티니 등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13~14세기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그들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성당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상부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를 묘사한 조토의 프레스코화 연작이다.



조토의 프란치스코 성인 생애 연작

조토 디 본도네(1267~1337)는 미술사 안에서 비잔틴의 시대를 끝내고 르네상스의 시대를 이끈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말은 곧 조토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그의 스승인 치마부에와의 공동 작품을 제외하고 그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은 현재 보르고 산 로렌조에 소장되어 있는 ‘성모자’(1285~1290년 작) 템페라화다. 하지만 미술사 안에서 그의 이름을 제대로 남긴 곳은 바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상부 성당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연작으로, 이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연작은 총 28점으로 제작되지만, 전체를 조토가 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술사 안에서 이 작품들의 작가명은 ‘Giotto e Bottega’로 표기된다. 말 그대로 조토와 공방이란 뜻이다. 또한, 미술사 안에서는 조테스키(Giotteschi)라고 구분하는데, 이 말은 조토의 스타일과 조토를 추종하는 화가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토의 죽음 이후 약 1세기 동안 이탈리아 미술계는 이 조테스키들이 이끌어 나가게 된다. 조토가 오랜 시간 이러한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출발점이 바로 이곳,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성인 연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연작을 한 작품 한 작품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듯 새로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인 공간감이 살아나고 있다.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서 조토는 오랫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원근법과 어설프지만 투시법을 다시 시도한다. 조토는 원근법과 투시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인 배경들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배경들의 입체감이 살아나고 공간감은 더욱 깊이를 갖게 됐다. 거기에 명암까지 사용하면서 인물들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적인 묘사들은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안 프란치스코 성인의 죽음이란 작품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조토는 이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인간들의 감정까지 표현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실적이란 단어와 인간이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단어들은 곧 르네상스를 의미한다. 이 단어들은 조토 이전에 그 누구에게도 붙일 수 없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그를 르네상스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부 성당 내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프레스코화의 색감은 다시 한 번 성당 하단에서 만난다. 높은 천장부터 성당 바닥까지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많은 방문객은 눈에서 불이라도 나올 것처럼 쏘아 보고, 눈에서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째려보며 이 연작들과 맞서고 있다. 그렇게 연구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러다 보면 가장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그것은 이 성당 안의 조화로움이다. 차분하게 앉아, 되도록 천천히 전체적인 것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조화로움 안에서 조토의 연작들은 드디어 완성되기 때문이다.



상·하부 제대와 지하 경당의 무덤

조토를 비롯한 당대의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하부 성당과 상부 성당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중심은 ‘제대’이다. 하부와 상부의 제대들은 지하 경당의 성 프란치스코 무덤과 연결돼 있으며,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게 한다.

성인의 무덤과 제대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순교자 공경에서 유래한다. 순교자(martyr)란 말의 뜻은 본래 ‘증인’ 또는 ‘증거자’이다. 첫 순교자는 그리스도로서, 그는 “성실한 증인”(묵시 1,5)이시다. 묵시록은 신앙 때문에 베르가모에서 죽은 안티파스에게도 같은 칭호를 내리고 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백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거하는 사람이다. 순교자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이와 함께 하는 이로, 그리스도와 동일한 신실성의 증거를 하느님께 바친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 공동체인 지역 교회는 순교자에게 특별한 공경을 표하는 기념을 바치고자 그의 무덤에 모여서 공경하는 예배를 드렸다. 박해 시기가 지나고 순교자 공경은 성인 공경으로 확대됐고, 순교자 무덤 위에 기념 성당을 지었던 관습이 성인 무덤에도 적용되었음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3세기의 제단 공간에 감실이 있지 않음도 주의 깊은 신자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감실이 제단의 중심이 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하셨지, ‘나를 잘 보존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곧 예수님께서 이루신 사건이 지금도 이루어지는 ‘제대’가 성체를 보존하는 ‘감실’보다 전례 공간에서 중심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공간 배치를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잘 보여주고 있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